수행은 꾸준히,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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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영란 작성일2014.01.05 조회3,801회 댓글0건본문
청전 스님의 법문 (2013.11.24 상도선원) : 끝없는 정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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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에서 수행 27년째인 청전(淸典)스님이 상도선원에 오셨다. 스님은 선원장 미산 스님을 비롯한 대중 스님들과 법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의 모습 등 상도선원의 분위기에 무척 감동하신 듯 했다. 스님은 이번에 다람살라로 돌아가면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뵙고 이젠 귀국하겠다고 보고 드리겠다고 했다. 의논이 아니라 보고이다. 기왕 오시기로 마음먹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오시면 좋겠다. 스님의 세수 지금 만 60세, 가난하고 맑게 수행자로 살아오신 스님을 우리도 좀 더 자주 뵙고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 포교의 장을 마련하고 불자들의 수행을 도우시겠다니 감사할 뿐이다. 아래는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간혹 메모한 부분을 옮긴 것이다.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과 인도에서 중국은 하늘(天)에 제사를 지냈고 인도는 신(神)에게 기도하고 복을 빌었다. 하늘은 위에 있고 신은 사람들 옆에 있다. 우리들에게 법(法)으로 길을 보여주신 거룩한 분 부처님은 “하늘도 신도 없다, 당신(우리들)이 바로 부처다.”라고 선언하신 분이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바른 법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수행의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포기 없이 매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수행이다. 티베트 스님들은 오체투지를 꼭 한다. 우리는 그런 과정이 없다. 단지 쉽게 하려하고, 빨리 빨리 성취하는 것을 추구하느라, 새 것으로 바꾸기를 일삼는다. 그렇게 해도 뚜렷한 게 없으니 불교를 포기하고 말아버리는 포기자가 많다. 수행은 정화 작업이다. 방법은 수없이 많으나 꾸준히 못하는 것은 우리의 탓이다. 수행자는 ‘지금 여기’뿐, 한 치 앞도 모른다. 청정기반이 아니면 어떤 것도 안 된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침상 머리맡에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하지 않은가. 거기에는 ‘붓다가 되어버린 붓다’가 아니라 붓다가 되기 전 고행하던 붓다가 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붓다 이전의 그 부처를 본받는 것이다. 붓다 이전을 닦는 것이 수행이다. 자기가 선택한 고행은 고행이 아니라 행복이다. 자기가 선택한 가난은 행복이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난행, 고행, 치열한 정진의 추구가 없는 수행을 하려면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게 낫다.
사흘만 굶어봐라. 세끼만 굶어도,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보인다. 한국인들은 짜증이 많고 감사할 줄 모른다. 다 남의 덕택인 걸 모른다. 연기법을 모른다. 수행은 음식을 먹는 것을 조심하는 것이 첫째이다. 몸을 고요하게 하는 음식을 먹고 고요하게 앉지 않고 수행이 어떻게 되겠는가. 법(다르마)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 법에 대한 확신이 믿음이다. 불교는 한 마디로 원인-조건의 연기다. 진정으로 필요한 언어, 말 없음의 상태에서 얻어지는 것이 영성이다. 영성에 있는 자는 어디에 있던 행복, 만족, 감사한다. 내가 아는 한 여성 최고의 훌륭한 분은 마더 테레사이다.
미국에서 최고의 실력자 300명의 의사가 5년간 연구해서 “착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병도 안 걸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마더 테레사, 보살들, 그리고 승만부인 같이 착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병도 안 걸린다. 착한 마음을 근간으로 이웃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 즉 보리심이 있어야 잘 사는 것이다. 제악막장(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을 과거 모든 부처님들이 말씀하시지 않았나.
탐진치의 뿌리를 정화하는 것이 수행이다. 붓다는 전생에 수많은 보살행을 하였고, 법에 대한 의지의 실천을 놓치지 않았다. 효봉 스님이 엉덩이가 터져 무를 때가지 한 자리에 앉아 계셨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남방에서는 사성제를 공부한다. 사성제를 기반으로 번뇌를 여의는 수행을 한다. 아라한이 최고의 경지이며, 사실 붓다로 본다. 전통불교라고 하는 테레바다 남방불교를 소승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 수행 방법이며, 수행에는 우열이 없다. 뭔가 한 가지를 정해 놓고 꾸준히 하는 정진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고행, 가난, 힘이 자신의 선택이면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부처님이 그것을 바탕으로 공부를 이루셨다. 편하면 졸음만 온다. 몸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몸을 이끌어야 한다. 법을 만난 소중한 시간, 지금 여기를 바탕으로 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늘 깨어 있으면 그는 수행자이다.
수행은 꾸준히,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멈추면 썩을 뿐이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간다.
불자들의 자괴감, 화내는 문제는 다 말에서 온다. 여럿이 있을 때 입을 지켜라.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지켜라. 이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스스로 겸손해지라. 시간을 아끼고 법에 따르는 삶,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이 쫄쫄거리고 내려오듯 공부 안 된 사람이 쫄쫄거리고 시끄럽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듯, 바다가 물의 왕인 것은 그것이 가장 낮은 데 있기 때문이다.
법을 금생에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끝없는 정진의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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