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온 작은손길의 따뜻한 1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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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12.02.04 조회3,366회 댓글1건본문
회원님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6.7도입니다. 신문을 보니 55년 만에 처음 경험하는 추위라고 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니 차가운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합니다. 어제도 추운 날씨라, 을지로에 가면서 기다리는 거사님들이 적을 줄 알았습니다. 가보니 평소처럼 비슷한 줄이 이어졌습니다. 날이 추운 것보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 더 큰 것은 아닌지요.
1월에 음력설이 끼어있다 보니 1월 한 달이 금방 지났습니다. 오늘이 벌써 2월 2일입니다. 지난 1월 22일은 저의 장모님 박완서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지 꼭 1년 째 되는 날입니다. 장모님은 살아계실 때 작가로서 이름이 높아 세상이 주는 명예를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신께서는 늘 겸손하고 분수에 맞게 사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끊임없이 사색하시며 사람답게 사는 길을 추구하셨습니다. 둘째 사위인 저는 어머니의 사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해외에 유학하거나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제 집사람이 어머니를 비교적 오랫동안 가까이서 모신 까닭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볼 수 있었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겪을 때 혼자만의 외로운 사색이 얼마나 필요한지 배웠습니다.
저의 교만이 조금이라도 줄었다면 모두 장모님을 가까이 모신 덕입니다.
제가 처음 작은손길을 시작할 때 장모님은 반대하셨습니다. 사업하는 틈틈이 공부한 것을 책으로 내는 일에 만족하길 바라셨지요. 그리고 사업으로 번 돈에 여유가 있으면 자선단체에 그냥 기부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사실 어머니 주위에는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어머니께 기부를 받으려는 뜻도 있었지만, 자기들의 행사에 초대하고자 했습니다.어머님이 참석하면 언론에 알리기 쉽고 공신력을 얻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머님이 거절할 수 없도록 갖가지 이유와 가까운 지인들을 내세워 어머니께 청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하시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우리 가족입장에서는 어머니의 건강과 연세를 생각하여 말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장모님은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주위사람들과 작은손길을 창립하여 직접 나서자, 장모님은 왼 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구절을 들며 조용히 당부하셨습니다. 장모님은 가톨릭에 귀의하셔서 집에는 가톨릭 교리나 봉사자에 대한 책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제 관심을 끈 사람은 도로시 데이 여사(1897-1980)입니다. 도로시 여사는 대공황기인 1933년 5월 ‘가톨릭노동자’라는 신문을 만들어 그 당시 교구마다 있던 불청객들과 순례자들에게 ‘환대의 집'을 소개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가자, 많은 행려자들이 ‘환대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그때 도로시 데이는 신문사로 쓰던 자신의 집을 노숙인들에게 ’환대의 집‘으로 내주어, 식사를 제공하고 쉴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늘 이렇게 성찰했습니다. “남을 도와주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난한 자에 대해 교만한가!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는다면서 또 우리는 세상살이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 속에는 사적인 의도와 동기가 숨어 있지는 않는가?”
도로시 여사가 추구하는 봉사는 불교의 무주상 보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제가 따르는 불교가 보살행을 강조하는 종교임에도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끄럽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장모님을 생각하면 뒤늦게나마 계시던 자리가 큰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장모님이 사시던 아천리 집에 가면 어머니의 자취가 생각나 그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은 자식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거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사위로서 사랑만 받고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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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도 회원 여러 님들의 자비로 잘 회향했습니다.
1) 1월 15일에 사진예술반은 겨울방학 특별프로그램으로 상암동CGV상영관에서 '장화신은 고양이(3D)'를 감상했습니다. 9명의 학생이 참가했으며 오선이 선생님이 자원봉사를 해주셨습니다.
2) 1월 18일 수요일 을지로따비에서는 음력설을 맞아 평소 드리는 떡과 과일 외에 가래떡을 두 개씩 준비해서 보시했습니다. 이가 좋지 않으신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래떡을 반기며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가래떡을 들고 먹었던 기억이 났던 까닭일 것입니다.
3) 우리가 추천한 사진예술반 학생 중 김송희 윤상복 엄효윤 세 학생이 2012년 상반기 불광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오는 2월 말 불광사에서 장학금을 받습니다. 이 세 학생은 작년에도 불광사장학금을 받은 바 있습니다. 특히 김송희양은 이번에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생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학금을 받기까지 모든 절차를 공덕행(박점순) 회원님이 맡아주셨습니다.
4) 2월 19일 우리 작은손길에서도 사진예술반 학생들을 위해 2012년도 1학기 장학금을 보시합니다. 예산은 250-300만원 정도인데, 지난 년말에 여러 회원님들께서 특별보시를 해주셔서 예산이 충분합니다. 불광사, 봉은사 그리고 우리단체까지 장학금을 주면 10명이 조금 넘는 사진에술반 학생들이 골고루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추천하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장학금을 주는 불광사와 봉은사 사부대중께 감사드립니다.
5) 1월 27일 삼양동 하늘씨앗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센터(방과후 학교)에 쌀 100킬로그램을 보시했습니다. 배달봉사를 맡아준 범일님, 묘법화님, 문선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쌀은 봉은사에서 부처님에게 올리는 무공해 쌀입니다.
6) 1월에도 여러 회원님들이 회비를 내주셨습니다. 특별보시로서 신설동 경로당 할머니들이 20만원을 보시해주셨습니다. 어려운 경로당 살림에서 특별히 20만원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종로에서 노인들에게 차봉사하는데 보태라는 당부와 함께 받았습니다. 노인들이라 종로노인들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십니다. 이외에 주현애 회원님이 20만원을, 을지로따비에 나오시는 장경숙보살님이 10만원을 보시해주셨습니다. 종로따비에서 봉사하시는 보광월 보살님께서 10만원 보시해 주셨습니다. 이문원 회원님이 30만원을 보시해주셨습니다. ‘주)이티아이 우리한마음’에서 30만원을 보시해 주셨습니다. 박미자 보살님께서 양말 100 켤레를 보시해 주셨습니다. 이 양말은 신설동 독거노인들에게 전했습니다. 매달 첫째 수요일 반찬봉사자인 상경화(김승경) 보살님께서 5만원을 보시해 주셨습니다. 넷째 주 금요일 종로봉사자인 조홍승님의 부인 전경자님이 10만원을 보시해주셨습니다.
다음은 구본희님이 작성한 지난 2011년 12월 회계 및 활동보고입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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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희님의 댓글
홍경희 작성일
참고로 <작은손길> 시진예술반 학생들은 탈북이주민 자녀들로
석명룡동문의 끝없는 원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