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 이기영박사님과 불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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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호 작성일2015.07.14 조회4,635회 댓글3건본문
불연 이기영 박사님과 불이상
김연호(제천우리는 선우 회장)
이글은 불이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발간한 책자에 실린글입니다.
“불이상不二賞이 무슨 상이요?” “한국불교계의 노벨상이요.”
약력 난에 제7회 불이상 수상을 반드시 올려놓으면서 무슨 상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었습니다. 저의 불이상 수상 약력은 이기영 박사님과의 인연에서부터 이야기가 되는 게 순서일 듯합니다.
1972년 8월 무주구천동에선 제1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화랑대회가 열였습니다. 전국 150여 명이 모여 일주일간 진행된 행사에서 당시 국민대학 학장으로 계시던 이기영 박사님께서 “한국 청년 불교운동의 새로운 방향” 이란 주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그 강연의 내용과 힘은 초보불자인 저에겐 엄청난 감동이었습니다. 그 강연은 차라리 한국불교의 불투명한현실 앞에 선 청년 불자를 향한 절규였습니다. 한국불교의 혁신에 동참하고자 하는 번쩍이는 눈빛들을 결코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감동의 흘러넘침을 참지 못하고 제가 사는 마을의 동민들을 정자나무로 모이게 하고서 화랑대회 참석 보고회를 가진 것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옵니다.
이후 매년 열리는 화랑대회에 이 박사님은 지도위원장으로서 꼭 참석하셔 5일간 직접 지도를 해주셨지요. 그 열악한 화랑대회장의 환경 속에서도 모든 체면과 일과를 뒤로하고 청년 불자 한사람이라도 이 사회 속의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열정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1974년 1월 중순 전주 위봉사에서 ‘제1회 전국 대불련 지도자 수련대회’를 가졌을 때입니다. 50여명은 4박5일간 이기영 박사님의 집중교육을 받게 되었지요. 위봉성 안의 50여 호 마을은 겨우 불자는 한집이고 나머지는 모두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촌이었습니다. 오직 토끼 길 같은 산길에 의존하여 눈길을 해치고서 15리 길을 걸어 오를 수 있었던 역사의 대찰 위봉사는 텅 빈 문화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 빈 절을 전주 대불련 인들의 눈물겨운 고운 손길로 바람 새는 벽과 내리 앉은 부엌을 손보고서 구들에 불울 지피고 촛불을 켜고서 대회를 열수 있었습니다.
이 박사님의 열강의 교육과 함께 불교지도자의 길을 집중 토론도 했었지요. 특히 이 박사님의 야심작인 한글 본 “새로운 예불문”은 압권이었습니다. 이를 직접 창제하시고서 가리방을 긁어 등사하여 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조석의 촛불 밑에서 삼보에 대한 찬탄과 30가지의 윤리기강을 목소리 높이어 반성하며 30배 참회의 절을 올렸습니다.
이후 이 박사님은 어느 자리에서 자기가 그토록 정성을 다한 ‘새로운 예불문’이 대불련을 통하여 잘 시행이 되지 않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시며 천만다행 제천의 김연호가 법회 시에 이를 실천하고 있는 자기의 ‘예불제자’라고 수기와 같은 말씀과 더불어 칭송을 아끼지 않으셨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박사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자 타향인 제천에서 불교청년회, 학생회, 거사림회 등을 창립하여 불교운동을 이어갔고 아울러 나 자신부터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는 진리를 체험하기 위하여 20년간 수집해온 문화재를 국립청주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것이 불이상의 수상이란 영예가 안겨진 공덕의 씨앗이 아닌가 합니다.
불기2536년(서력1991) 1월12일 부처님 성도절, 당시 서울 강남 개포동에 자리한 한국불교연구원에서의 제7회 불이상 수상 영광의 자리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교육학의 김종서박사님, 불교사학의 김상현 교수, 불교연구원의 김종하 박사님 등의 석학들, 열 분의 훌륭하신 불이회 보살님들, 법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 여기에 제7회 불이상 수장자로 선정된 효탄스님, 전재성, 박상필, 김연호 등 네 사람으로 한창 추운 1월 중순이었지만 온화한 분위기 가운데, 이 박사님은 원효성사 본업경소의 “같이 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라는 법문을 온몸으로 보이셨습니다.
제2부 불이상 시상식에선 불교학, 실천, 장학, 출가면학 등의 각 부문에 대한 수상자의 공적에 대하여 역시 이 박사님의 말씀이 있은 후, 곧 윤용숙 보살님으로부터 상장과 상금 2백 만 원이 주어졌습니다. 전 상을 받으면서도 불이회란 존재를 전혀 몰랐습니다. 점심공양의 자리에서 상을 주신 윤용숙 보살님께 불이회에 대하여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내용은 미술품을 좋아하여 박물관에서 자주 만나는 열 분이 우연찮게 종교가 모두 불교라는 사실에 뜻을 모으게 된 것이 불이회의 출발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건전한 모임 속에 훌륭하신 상까지 제정하신데 대하여 저는 영원히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불가 주변의 정서가 준 것은 잊어버리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크든 작던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이지요. 준 것에 대한 공덕의 씨는 불성에 자양분이 되기 때문에서입니다.
당시 불이상의 4인 가운데 효탄스님은 수행자시라 소식이 전무하며 전재성 박사님은 소승불교 경전의 번역가로 한국불교에 기념비적 존재이며, 박상필 선생은 불교방송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로 포교에 전력하고 계시며. 더해서 감히 세 분에 비하면 명함을 내놓기에 부끄럼운 저는 대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박사님의 청년 불자들을 향한 애타는 외침을 저버리지 않으려 정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불이상은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이회의 핵심 멤버이신 실상화 보살님께선 매년 ‘제천 우리는 선우’의 신년법회에 후원을 해주고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올 신년에는 제천 거주 사할린동포 1백 여 명과 함께한 법회에 보살님의 후원은 더욱 그 빛이 돋보였습니다.
40년간 우리불교계의 인재불사에 기름진 자양분이 되어준 불이상의 주역이신 불이회의 보살님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수상한 150여 명이 넘는 불자들의 공간에 걸려 있을 불이회란 이름은 저 인도의 거룩한 성지인 아잔타와 산치대탑의 곳곳에 새겨진 시주자의 영원한 공덕에 견주어 모자람이 없으리라 보며 두 손 모아 수희찬탄 하는 바입니다.
댓글목록
부산이성균님의 댓글
부산이성균 작성일
불이상이 그렇게 생겨났던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너무도 좋은 인연에 감사드리옵고,
무엇보다도 꺼지지 않고 수십년을 이어오시는 그 열정과, 보살행에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후배 부산 이성균 합장.
전명철님의 댓글
전명철 작성일
대단한 상을 40년 전에 받으셨네요 !
뒷줄 우측에서 4번째 보살님이 지금 불이회 회장이신 홍라희 여사가 아니신가요 ?
김연호님의 댓글
김연호 작성일
저의 지금까지 삶의 정서는 대불련 인맥에 있으면서도 근자에 기여도가 전무했음에 참회합니다.
전대사의 물음 맞습니다.
당시 불이회 초기 멤버 중에는 풍산금속 오너 사모님, 현대미술관 관장님 등등 한국 경제와 문화예술의 기여도에 높으신 분의 사모님과 당사자가 많습네다.
또 앞줄에는 이기영박사님, 김종서 전청와대 교육개발원장, 수장자는 대불동문이신 전재성, 박상필. 효탄스님은 고김상현동문의 제자로서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을 지내셨고, 현재 서울 심택사에 계시는 아주 훌륭하신 비구니 스님이십니다. 찾아뵙길!
늘 소인의 글을 그냥 지나지 않고서 지대한 관심으로 댓글을 주신 이성균 아우 법우님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