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련 시절 도반 인연 이어진 보살 이야기 <주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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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3.09.16 조회3,957회 댓글1건본문
▲ 주경 스님
(서산 부석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수덕사에 출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도량에서 울력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와 함께 온
젊은 보살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대불련(대학생불교연합회)활동을 하지 않으셨나요?”
“아~ 네, 그런데요.” 잠시 손을 멈추고 그 보살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자신도 대전에서 대불련 활동을 했는데 전국연합수련회
때 본 기억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잠시 인사를 나누고 초심출가자로서의 형편도
그렇고 어머니와 함께 온 그 보살님의 여건도 그렇고 해서 간략하게 대화를 정리하였다.
지역은 다르지만 대학시절 같이 불교활동을 했다는 것이 인연이 되어 수덕사 인근인 홍성이
고향이었던 진 보살은 그렇게 나와의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였다.
대학시절에 열성적으로 불교활동을 하던 대부분의 법우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이
멀어지곤 했다. 거의가 동문모임을 만들어 옛 시절을 추억하며 인간관계를 유지할 뿐 사찰에 신도로
등록해서 신행활동을 하거나 법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 상황을 익히 아는 내게 신도로서 어머니와 함께 절에 꾸준하게 다니는 진 보살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대불련 이후에도 당당하고 성실한 불자로서 법회와 기도에 참석하는 모범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후 내가 해인사 승가대학에 갔을 때와 진보살의 남편이 지방에 멀리 직장을 얻었을 때 등 수년씩
보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10여 년 전 부석사 주지소임을 맡으면서 다시 가까운 인연이 되었다.
작은 체구에 두드러지지 않는 외모의 진 보살은 나름 불교와 인생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강단이
있었다. 결혼 뒤 몸에 지병이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아들과 딸을 낳아 잘 길렀고, 시댁과 친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해내곤 했다.
진 보살은 부석사에 다니면서 다른 신도들과 잘 어울리고 봉사도 열심히 하였지만 때때로 오랜
인연을 가진 주지를 향한 쓴 소리를 대변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진 보살이 불만스러운 말을 쏟아 놓았다.
“스님은 여자를 너무 몰라요. 그렇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니, 뜬금없이 무슨 말이예요?”
“아니~ 주지를 하시는 분이 대부분이 여자인 신도들의 마음을 너무 모르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내가 그렇게 신도들의 마음을 모르나요?” “아니,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니까요!”
사연인즉, 신도들의 다양한 요구와 불만을 잘 알아주지 않는 주지의 무심한 태도를 흉보다가 자신이
대표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아이구, 그렇습니까. 제가 앞으로는 여성들, 신도님들 마음을 잘 알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년간 좋은 주지가 되려고 여성과 신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잘 맞춰보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스님은 여자를 모른다.’는 불만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요즘은 가끔 신도들로부터 “우리 스님은 결혼도 안 해봤는데, 어쩜 그렇게 여자들 속을 잘 아신대요”
라는 말을 듣곤 한다. 진보살의 충고가 이제야 효과를 보는 듯하다.
때로는 학창시절의 좋은 법우였고, 때로는 기도와 불사에 흔연히 참여하는 신심 깊은 신도였으며,
한 번씩 가슴이 서늘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던 진 보살은 초임주지의 어려움을 도와준 진정한
호법보살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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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호님의 댓글
김연호 작성일
우리 대한불교조계종단의 업무행정과 기획에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계시는 주경스님께서 기고하신 대불련 시절인연 참 그립던 옥고입니다.
우선 스님께서 대불련출신이라고 밝히신게 고마우시고 애뜻한 사연이 마치 저의 이야기인양 읽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대불련동문회에 각별한 관심과 참여로 훌륭한 일을 하게 힘을 실어주소서.
충북제천에서 재가처사 김연호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