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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수필가 서 스님으로… 학송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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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호 작성일2013.10.25 조회3,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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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 2013년 10월 16일
 
< My new life >
대학교수 던지고 출가 “꿈 위한 마지막 몸부림”
대학교수·수필가서 스님으로… 학송스님
고광일기자 ki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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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대학교수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회갑의 나이에 출가한
     학송 스님이 14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남들로부터 선망받는 학벌과 직업을 버리고, 가족마저 세상에 남겨두고 꿈을 좇아 홀로 떠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특히 은퇴할 나이가 다 된 시기에 청춘시절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속을 떠나 승려가 된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돈키호테’와 같은 행동이라고 주위로부터 비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자신과 세상을 살찌우고 올바르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부러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필가이자 대학교수직을 뒤로한 채 회갑(回甲·만 60세)의 나이에 출가해 10년째 산속에서 승려생활을 하는 학송(鶴松·69·본명 권경술) 스님.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강원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삼원수마을(절골) 끝자락의 만대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불영사(佛迎寺)’를 찾았다. 당초 스님은 “내가 꿈꾸는 사상에 대한 것이 아닌, 소소한 인생 이야기를 쓰려면 찾아오지도 말라”고 말해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갔지만 기우였다. 스님은 온화한 얼굴로 반갑게 맞으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활짝 풀어놨다.
 

지난 1944년 경남 진주시에서 한의사의 5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부산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는 등 소위 ‘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재였다. 법관이나 정치가를 꿈꾸던 스님이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66년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독립운동가이자 스님인 의탁 소천 선사(1897∼1978)의 저서 ‘활공원론(活功原論)’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활공사상이란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한 국민에게 법적 우대조치를 보장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려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을 따르면 자신도,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보살도(菩薩道)를 구현해 널리 이웃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에 부합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활공사상은 세계적으로도 자랑스러워해야 할 사상으로 홍익인간 사상을 현 세상에 적용·실천할 방법론이며 이를 실천하면 인류의 문제가 해결되고 진리를 깨달아 자아를 완성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사상을 창안·보급해 인류위기의 극복은 물론 자아를 완성하도록 이끈 위대한 선각자요 사상가이며 교육자이자 도인(道人)인 소천 선사는 인류 모두의 스승으로 공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활공사상에 감명받은 그는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대학 졸업 직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행자생활을 하는 등 승려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으며 소천 선사가 머물던 인천 보각선원에 드나들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스님은 결혼을 한 뒤 1남 1녀를 낳고 경남 창원기능대에서 10여 년간 노동법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했다. 1992년에는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결재판’이 당선돼 수필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활공사상에 심취한 그는 퇴직 후 1997년쯤 불교단체인 ‘새생각실천회’를 만들어 서울 일원의 절과 주택 등에서 불교 교리를 강의하며 소식지 ‘새생각’을 10여 차례 펴내는 등 활공사상 전파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승(僧)도 속(俗)도 아닌 경계인의 삶’을 살던 그는 2003년 노모가 돌아가시자 가족들과 상의한 후 2004년 4월 20일 회갑의 나이에 출가를 단행, 26년 전 열반한 소천 선사의 위패상좌가 됐다. 뒤늦게 승려가 된 것에 대해 학송 스님은 “소천 선사의 활공사상을 계승·연구·발전시킨 책을 출간, 인류의 위기를 극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원대한 꿈을 일깨우고 다음 세대와 함께 가꾸고 싶은 소망이 간절해 출가를 하게 됐다”며 “늦깎이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대학 때부터 38년 동안 일관되게 꿈꿔 온 정치와 종교의 공조에 대한 관심과 활공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자 몸부림”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스님은 경기 파주시 보광사에서 1년여 동안 다른 스님들과 공동생활을 한 뒤 2005년 7월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인 부산에 있는 땅을 팔아 현재의 절을 매입, 10년째 홀로 밥도 짓고 반찬을 만들며 빨래도 하는 등 ‘독살이 생활’을 하고 있다.
 

스님은 법당에서는 불공을 드리고, 1000여 권의 불교·정치 관련 서적들로 들어찬 법당 옆 33㎡의 서재에서는 활공사상을 연구하며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곳에서 스님은 불교 교리를 쉽게 설명한 ‘고쳐 풀이한 법성게’와 이를 생활에 연결시킨 ‘태교와 입태기도 그리고 온전한 결혼문화 창달을 위한 제언’, 활공사상 해설서인 ‘정치와 종교의 공조-금강산에 도인이 없으면 장안에 정승감이 없다’ 등을 집필 중이다. 앞서 스님은 출가 전에 ‘구종인간’(九種人間·1990)을 시작으로 ‘하산, 그 다음 이야기’(1992), ‘정도령(正道令)과 정도령(正道領)’(2002) 등의 서적을 낸 데 이어 출가 후에는 ‘아이고 부처님’(2004), ‘대보부모은중경총설’(2011) 등 모두 5권의 수필·산문집을 출간했다.
 

이처럼 고독한 생활이 힘들지는 않을까. 스님은 “혼자서 숙식과 저술활동 등 일상사를 해결해야 돼 벅차기도 하다”면서 “홀가분함과 고적감이 집중력을 길러주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그동안 정치와 종교의 연결고리를 찾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활공사상 연구와 저술활동에 매달린 스님은 이제 이를 확산·실현시키는 데 전력을 쏟을 계획이다.
 

스님은 “나라가 바로 서야 종교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며 “‘베풀어 풍요로운 절’ 가꾸기 운동이 확산돼 사찰들이 재물을 쌓아두거나 외형을 키우는 일을 삼가고 수행자들은 본분에 걸맞은 무소유의 삶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활공사상 교육을 통해 새로운 꿈을 가꾸고 구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청소년수도원’과 황혼출가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인들을 공경하고 봉양하는 ‘봉로원(奉老院)’ 건립은 20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내 삶의 지주”라면서 “이를 실현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라고 말했다.
 

횡성 = 고광일 기자 ki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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