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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사표’ - 무진장 스님 9일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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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3.09.09 조회3,41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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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새벽 동국대 일산병원서.... 포교원장 등 역임 포교 견인

9월13일, 범어사서 영결식 엄수

조계종 원로의원 혜명당 무진장 스님(조계사 회주)이 9월9일 오전 4시30분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적했다. 
법납 58세, 세납 82세.
무진장 스님의 분향소는 회주로 소임을 지내신 서울 조계사와 출가본사인 금정총림 범어사에 마련됐다.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9월13일 오후 4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된다.
 
 

1932년 제주에서 태어난 무진장 스님은 1956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60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범어사 불교전문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68년 태국으로 건너가 1968년 방콕 왓 
벤타마보핏 사원에서 남방불교를 연구하고, 일본 경도불교대학 대학원에서 천태교학을 연구한 후 
귀국해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스님은 1970년대부터 조계사에 주석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불교발전과 대중포교를 위해 노력했다. 
조계종 제2·4대 포교원장을 역임하고 200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된 뒤 대종사로 품수됐으며 2010년 
조계사 회주로 추대됐다. 평생 대중교화와 교육에 매진해 조계종 포교대상, 제3회 대원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스님은 평생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스님은 평생 주지 소임을 맡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어떠한 재산도 갖지 않았다. 이유 없는 보시를 결코 받지 않았으며 평생을 
조계사 근처에 머물렀지만 그 흔한 찻집 한 번 출입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스님의 고집을 어려워하고 
간혹 불만을 털어놓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는 호통을 듣기 일쑤였다.
 

 
 무진장 스님은 언제나 회색이 아닌 괘색으로 된 승복을 착용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에 대한 물음에 스님은
 “율장을 보면 승가의 옷은 괘색 ‘카사야’ 하나 뿐이야. 분명히 가르침이 나와 있는데 왜 회색 옷을 입나? 
그리고 출가했다는 표시로 머리를 깎았으면서 모자를 쓰는 것이 말이 돼나”고 반문했다.

무진장 스님은 “공부하는 불자, 실천하는 불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자들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복달라고 빌어도 부처님이 절대 복 안주십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공부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불자들의 진짜 기복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진정한 복 아닙니까.”
<법보신문 2013.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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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명철님의 댓글

전명철 작성일

무진장 스님의 원적을 가슴 깊이 애도합니다 !

고등학교 시절 매월 월말고사를 치르는 날은 항상 일찍 파하는지라,
불교학생회 회장 소임을 맡고 있던 저는, 교내 월례법회에 법사스님을 모시기 위해 매번 이 절 저 절 좇아다녀야 했습니다
.
그러나 방울 홍도 스님외에는 거의 매번 스님들께 거절 당하고,
결국에는 또다시 창립법회 때 부터 초청에 응해주신 무진장 스님을 모시곤 했습니다.

법명 만큼이나 무진장하시고, 법문도 잘해주시던 무진장 스님 !
      입- 적 -    하셨네요 !                            _()_ _()_ _()_

이자옥님의 댓글

이자옥 작성일

무진장스님의 열반을 애도하며

  무진장스님! 떠나셨습니까? 정녕 우리 곁을 떠나신 것입니까?
먼 여행길에서 돌아와 늦게야 스님의 입적소식을 접했습니다.
진정 후학들을 아끼고 경책하시던 스님의 떠나심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무진장하게, 그것도 힘이 넘치게 쏟아내는 법문이 좋아서
대학시절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스님을 모셨고,
학생들은 폭우 같은 말씀에 매료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청하는 곳이면 어느 모임이든 가리지 않고 스님은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소유를 온몸으로 실천하시며, 괘색 옷 단벌로 살아오신 스님은
‘청빈’의 대명사였습니다.

  젊은 날 해인사에서 본 풀 먹인 광목날이 선 수좌스님들의 법의와
낡을 대로 낡아서 얇아진 스님의 소맷자락을 보면서
진정한 수행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건강치 않은 노구를 이끌고도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신 스님은
후학들에게 항상 열심히 공부할 것을 힘주어 강조하셨습니다.

  무진장스님! 스님이 이승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아직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옛날 조계사 작은 뒷방에서 오로지 후학들 지도와 공부에 매진하시던 스님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살다 가신 그 삶을 칭송하며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부디 좋은 곳에 나셔서 이 세계와 후학들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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