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리 진 밤에 도반 향산에게서 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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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전달 작성일2008.09.12 조회3,336회 댓글1건본문
불교계의 의지와 요구를 보여주는 세련된 방법이 없을까요?
1.
지난 8월 27일 열린 범불교도대회에 “수십만 명이 모였다”고 해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불자들의 기개(氣槪)를 보여 주었다”며 만족하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형식상 “아, 조금 미안하네요!”하는 표시를 하게 했고, 경찰청장은 막무가내로 사과를 하러 온 나라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게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뜻 있는 불자들 중에서는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도 많더군요.
2.
제가 아는 분이 그날 대회에 다녀와서 제게 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분은 40대 중후반의 우바이인데, 가정도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않지만 평화롭고 화기 넘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아서 불교 서적을 즐겨 읽고 종종 절에 가서 108배도 드리고 그런답니다.
직장 일이 바쁜데도, “불자로서 당연히 가 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날 시청 앞에 갔었습니다.”고 하면서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한 번 들어봐 주세요.
한편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아요
스님들은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한 수행자 모습만 보여주시고, 재가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게 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것 같아요.
아마 그렇게 했다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심지어 다른 종교 신도들까지도 감동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 혹 이런 대회를 개최해야 된다면, 제발 스님들은 의연하게 위의를 지키고 재가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제 생각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
글쎄요, 저는 이분의 의견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세요?
3.
얼마 전(9/5), 아주 오랜만에 헌혈을 하고 제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몇 군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헌혈을 한 것은 1995년 여름 무렵이다.
“예비군 훈련을 빼준다”, “민방위 훈련을 면제해준다”고 해도 겁이 나서 헌혈을 하지 않던 내가 느닷없이 헌혈을 하게 된 사연이 있다.
그 전 해인 1994년 겨울, 대학 선생과 박사 학위에 대한 미련을 모두 집어 던져버리고 두 군데 사업에 투자했던 것이 그 해 여름에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정말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실패를 하게 되면 주변의 가까운 이들과도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 경제적인 것에다 이런 저런 일들이 몰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헌혈을 시작하고 몇 군데 ‘좋은 일’을 하는 곳에 후원회비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달력에 빨간 글씨로 다음 번 ‘헌혈’ 날짜를 표시해놓고 가능하면 3개월에 한 번은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2000년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헌혈의 집을 찾아갔는데, “지난 번에 하신 헌혈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과 지방간 수치가 너무 높아 헌혈이 불가능합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이제까지 “다시 해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경희대 강독 수업을 다니면서부터,
회기역 바로 앞에 있는 헌혈의 집을 지나치려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랬지만 그래도 괜히 시간 핑계를 대며 또 미루길 몇 달이 지났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마음’을 내어 헌혈을 했다.
검사 결과 “혈압도 정상, 빈혈 증세도 없고, 철분 수치도 정상입니다. 마지막 헌혈은 2000년 5월 2일에 하셨습니다.”는 ‘반가운 정보’도 얻었다.
3,000원짜리 문화상품권도 선물로 받고,
과자[롯데 제크 2개]는 가지고 와서 친구와 나누어 먹었다.
책읽기 모임에서 마침 《대승불교의 보살》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작은 보시행이라도 다시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 친구도 “헌혈을 하고 간다”는 메시지에 화답하며 “고마운 일입니다. 축하합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으니, 이번 헌혈 덕분에 얻은 것이 꽤 많다.
이번에는
‘좋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헌혈을 시작했다는 점이
13년 전의 ‘헌혈 시작’과 다르다.
그래서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엉뚱한 제안 같지만,
범불교도대회가 되었든, 승려대회가 되었든
<종교 편향 반대>나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흔들지 말고 스님들 수 천 명이 모두 일렬로 서서 헌혈을 하는 佛事를 해보면 어떨까?
수십 만 명이 모여서 목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보다 더 큰 반향이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보고 여러분이 “동감한다. 그런 법회가 열리면 나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4.
여기서 좀 엉뚱한 이야기를 할까요?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날씨가 추운 스웨덴에서는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혹 정국이 경색되고 그것이 풀릴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을 때면 여야당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이 함께 사우나를 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홀딱’ 벗고 함께 사우나를 하면서 개인사와 가족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서로 솔직해진다는 것인데, 서로 솔직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제 아무리 꽉 막혔던 정치 문제라고 할지라도 훨씬 쉽게 풀려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불교계 어른들 사이에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떠나 함께 침대에 누워 헌혈을 하게 해드리면 어떨까? 아니면 총무원장과 중요 소임을 맡은 스님들, 교구본사 주지와 종회의원 등 자리를 맡은 스님들이 동시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내부 문제도 쉽게 해결되고, 바깥세상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느낌도 아주 많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정권의 종교 편향과 차별 등에 대한 의사표시를 수만 내지 수십만 대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하는 것보다, 단 몇 백 분의 스님들이 동시에 헌혈을 하거나 장기 기증서약을 하고 스님들을 외호할 재가 대중들이 그 스님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
저는 장경동목사나 한기총과 같은 집단에게서 기독교의 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이 해운대 백사장에 수십만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 아니 천만 명이 모여서 “불교 무너지라!”고 아무리 소리를 친다고 해도 거기에서 기독교의 힘을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 저들의 종국이 보이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제가 기독교의 힘을 느끼는 것은, 위와 같은 이들에 대해 비하하고 기독교 내의 잘못에 대해 용기있게 저항하는 유상태목사나 이찬수교수 같은 인물들을 볼 때이고, 개신교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자기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아마 수십만 명이 모여서 소리를 지르면, 바깥세상에서 “아, 저기도 힘이 있네!”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내부적으로 “우리도 대단하다”면서 단결을 가져오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일반 대중들의 느낌은 꼭 긍정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가사 장삼을 수한 스님들 수백, 수천 명이 헌혈을 하려고 질서 있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이미 불교 신도가 된 사람들의 감동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바깥세상의 일반인들이 받는 감동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 뉴스를 들으니, 대구-경북지역부터 시작해서 지역별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전국승려대회까지 열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모두 다 좋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일반인들의 시위나 흔히 ‘개독’이라는 욕까지 얻어먹는 개신교의 일부 광적인 신자들이 하는 시위와는 180° 다르게, 수행자의 의연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보시행을 실천하는 헌혈대법회로 했으면 합니다.
아니, 헌혈법회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그와 비슷한 다른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중지(衆智)를 모으면 될 것입니다.
위에서 전해드렸던 어느 여자 신도의 제안이나 저의 헌혈법회 제안,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1.
지난 8월 27일 열린 범불교도대회에 “수십만 명이 모였다”고 해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불자들의 기개(氣槪)를 보여 주었다”며 만족하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형식상 “아, 조금 미안하네요!”하는 표시를 하게 했고, 경찰청장은 막무가내로 사과를 하러 온 나라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게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뜻 있는 불자들 중에서는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도 많더군요.
2.
제가 아는 분이 그날 대회에 다녀와서 제게 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분은 40대 중후반의 우바이인데, 가정도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않지만 평화롭고 화기 넘치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아서 불교 서적을 즐겨 읽고 종종 절에 가서 108배도 드리고 그런답니다.
직장 일이 바쁜데도, “불자로서 당연히 가 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날 시청 앞에 갔었습니다.”고 하면서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한 번 들어봐 주세요.
한편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아요
스님들은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한 수행자 모습만 보여주시고, 재가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게 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것 같아요.
아마 그렇게 했다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심지어 다른 종교 신도들까지도 감동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 혹 이런 대회를 개최해야 된다면, 제발 스님들은 의연하게 위의를 지키고 재가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제 생각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
글쎄요, 저는 이분의 의견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세요?
3.
얼마 전(9/5), 아주 오랜만에 헌혈을 하고 제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몇 군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헌혈을 한 것은 1995년 여름 무렵이다.
“예비군 훈련을 빼준다”, “민방위 훈련을 면제해준다”고 해도 겁이 나서 헌혈을 하지 않던 내가 느닷없이 헌혈을 하게 된 사연이 있다.
그 전 해인 1994년 겨울, 대학 선생과 박사 학위에 대한 미련을 모두 집어 던져버리고 두 군데 사업에 투자했던 것이 그 해 여름에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정말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실패를 하게 되면 주변의 가까운 이들과도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 경제적인 것에다 이런 저런 일들이 몰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헌혈을 시작하고 몇 군데 ‘좋은 일’을 하는 곳에 후원회비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달력에 빨간 글씨로 다음 번 ‘헌혈’ 날짜를 표시해놓고 가능하면 3개월에 한 번은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2000년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헌혈의 집을 찾아갔는데, “지난 번에 하신 헌혈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과 지방간 수치가 너무 높아 헌혈이 불가능합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이제까지 “다시 해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경희대 강독 수업을 다니면서부터,
회기역 바로 앞에 있는 헌혈의 집을 지나치려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랬지만 그래도 괜히 시간 핑계를 대며 또 미루길 몇 달이 지났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마음’을 내어 헌혈을 했다.
검사 결과 “혈압도 정상, 빈혈 증세도 없고, 철분 수치도 정상입니다. 마지막 헌혈은 2000년 5월 2일에 하셨습니다.”는 ‘반가운 정보’도 얻었다.
3,000원짜리 문화상품권도 선물로 받고,
과자[롯데 제크 2개]는 가지고 와서 친구와 나누어 먹었다.
책읽기 모임에서 마침 《대승불교의 보살》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작은 보시행이라도 다시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 친구도 “헌혈을 하고 간다”는 메시지에 화답하며 “고마운 일입니다. 축하합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으니, 이번 헌혈 덕분에 얻은 것이 꽤 많다.
이번에는
‘좋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헌혈을 시작했다는 점이
13년 전의 ‘헌혈 시작’과 다르다.
그래서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엉뚱한 제안 같지만,
범불교도대회가 되었든, 승려대회가 되었든
<종교 편향 반대>나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흔들지 말고 스님들 수 천 명이 모두 일렬로 서서 헌혈을 하는 佛事를 해보면 어떨까?
수십 만 명이 모여서 목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보다 더 큰 반향이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보고 여러분이 “동감한다. 그런 법회가 열리면 나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4.
여기서 좀 엉뚱한 이야기를 할까요?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날씨가 추운 스웨덴에서는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혹 정국이 경색되고 그것이 풀릴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을 때면 여야당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이 함께 사우나를 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홀딱’ 벗고 함께 사우나를 하면서 개인사와 가족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서로 솔직해진다는 것인데, 서로 솔직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제 아무리 꽉 막혔던 정치 문제라고 할지라도 훨씬 쉽게 풀려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불교계 어른들 사이에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떠나 함께 침대에 누워 헌혈을 하게 해드리면 어떨까? 아니면 총무원장과 중요 소임을 맡은 스님들, 교구본사 주지와 종회의원 등 자리를 맡은 스님들이 동시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내부 문제도 쉽게 해결되고, 바깥세상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느낌도 아주 많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정권의 종교 편향과 차별 등에 대한 의사표시를 수만 내지 수십만 대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하는 것보다, 단 몇 백 분의 스님들이 동시에 헌혈을 하거나 장기 기증서약을 하고 스님들을 외호할 재가 대중들이 그 스님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
저는 장경동목사나 한기총과 같은 집단에게서 기독교의 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이 해운대 백사장에 수십만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 아니 천만 명이 모여서 “불교 무너지라!”고 아무리 소리를 친다고 해도 거기에서 기독교의 힘을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 저들의 종국이 보이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제가 기독교의 힘을 느끼는 것은, 위와 같은 이들에 대해 비하하고 기독교 내의 잘못에 대해 용기있게 저항하는 유상태목사나 이찬수교수 같은 인물들을 볼 때이고, 개신교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자기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아마 수십만 명이 모여서 소리를 지르면, 바깥세상에서 “아, 저기도 힘이 있네!”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내부적으로 “우리도 대단하다”면서 단결을 가져오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일반 대중들의 느낌은 꼭 긍정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가사 장삼을 수한 스님들 수백, 수천 명이 헌혈을 하려고 질서 있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이미 불교 신도가 된 사람들의 감동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바깥세상의 일반인들이 받는 감동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 뉴스를 들으니, 대구-경북지역부터 시작해서 지역별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전국승려대회까지 열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모두 다 좋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일반인들의 시위나 흔히 ‘개독’이라는 욕까지 얻어먹는 개신교의 일부 광적인 신자들이 하는 시위와는 180° 다르게, 수행자의 의연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보시행을 실천하는 헌혈대법회로 했으면 합니다.
아니, 헌혈법회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그와 비슷한 다른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중지(衆智)를 모으면 될 것입니다.
위에서 전해드렸던 어느 여자 신도의 제안이나 저의 헌혈법회 제안,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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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목재님의 댓글
돌목재 작성일
정말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재가불자자 명실상부하게 종단의 일원, 실질적인 사부대중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바새 우바이도 조계 종회 의원도 되고 총무원 행정에도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