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에 부처님의 자비가 있는가! (노공)....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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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08.06.04 조회3,163회 댓글1건본문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사랑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려고 무한히 노력해 왔다.
나는 조국이 무엇을 해주기 바라기보다는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우선 생각해 온 것도 사실이다.
나는 범세계적인 불교보다는 한국불교의 국제화를 우선 염두에 두면서 우리 한국불교를 위해 온갖 성의를 다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가 든다.
그것도 많이 든다.
세상에 국민에게 광우병 공포를 심어주는 국가에 어떻게 충성하라는 이야기인가.
그 공포에 대해 거부하는 촛불을 든 청소년들에게 괴담을 믿고 거리에 뛰쳐나온 철부지들이라고 하는 한국불교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인가.
대승불교에 와서 육식은 거부되어 왔다.
참 잘한 일이다.
오늘을 내다 본 혜안이다.
초식동물에게 동물 뼈 가루를 먹여 하루속히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욕심이 도리어 그 소를 미치게 했고, 그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고 있다. 아니 뇌가 송 송 송 뚫어져 눈만 멀뚱멀뚱 뜨다가 죽으라 하고 있다.
누가 먼저 미치게 하는지 사람들은 러시안 룰렛게임을 즐기고 있다.
욕심 없이 소에게 풀을 뜯기게 하고 일도 하면 별 문제 없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힘들게 일하고 온 우리 집 소에게 소우리가 답답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소를 풀어주어 혼이 많이 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고마운 소가 달구지를 매달고 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혹여나 달구지가 무거울까 내려서 같이 걸어갔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 다가온다.
그 소가 형님들 수업료를 위해 팔려가는 줄 모르고 눈물 흘리며 우시장으로 향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안 좋은 추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는 광우병이 없었다.
육골 분 사료도 없었고 일하지 않는 소도 없었다.
그 소는 한평생 일하다 사람들 교육에 헌신했고 마지막 살덩이마저 무주상보시하고 갔다.
청소년들도 답답하단다.
오직 공부만 하란다.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아니 사교육의 새벽까지 눈치 보지 말고 우정은 생각지도 말고 배려도 생각지도 말고 친구는 옛말이니 아니 경쟁의 대상일 뿐이니 공부만 하란다.
그것도 모자라 너무 공부하다 미치기 전에 광우병 걸린 쇠고기 급식의 공포까지 감내하란다.
아! 우리들의 대한민국, 어떻게 호국하라는 것인가!
나는 불자이다.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범세계적인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불교가 좀 더 이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이끌기를 바란다.
육식을 거부하는 종교와 정치체제는 불교공동체밖에 없다.
이거 오늘의 희망이다.
그렇게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왜 이야기 하지 않는가.
경쟁을 벗어나 창의와 상상력을 키우는 자유롭고 인간적인 교육을 왜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맞는 대안교육을 말하지 않는가.
오늘의 한국불교에 부처님의 자비는 있는가!
나는 오늘도 촛불을 들었다. 나이 40중반에 철부지라면 할 수 없지만 내 나름 부처님의 뜻이라 확신하고 자비라 생각하고 거리를 자그맣게 밝혔다.
내일은 촛불보다는 연등을 밝혀야겠다.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어둠을 밝히는 연등을 환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 우리 불자의 역할 아닌가.
이 우리들의 대한민국, 당신들의 말대로 광우병나라 쇠고기 수입에다 학원자율화조치에다 대운하에다 자유무역에다 공기업 민영화에다 모든 규제의 철폐 등으로 모든 농민과 사회적 약자를 거리에 내몰아 국력 낭비하는 이 당신들의 대한민국 국가권력은 최소한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지켜야 할 기본 자질은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
이 우리들의 한국불교, 모든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괴담이라 말씀하시는 당신들의 한국불교, 연등축제를 문화재로 화석화할 게 아니라 중생 살리자는 연등 문화재를 만들 법력은 없는가!
불자들은 우리들의 대한민국 중생들에게 최소한 자비심은 보일 의무는 없는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사랑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려고 무한히 노력해 왔다.
나는 조국이 무엇을 해주기 바라기보다는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우선 생각해 온 것도 사실이다.
나는 범세계적인 불교보다는 한국불교의 국제화를 우선 염두에 두면서 우리 한국불교를 위해 온갖 성의를 다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가 든다.
그것도 많이 든다.
세상에 국민에게 광우병 공포를 심어주는 국가에 어떻게 충성하라는 이야기인가.
그 공포에 대해 거부하는 촛불을 든 청소년들에게 괴담을 믿고 거리에 뛰쳐나온 철부지들이라고 하는 한국불교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인가.
대승불교에 와서 육식은 거부되어 왔다.
참 잘한 일이다.
오늘을 내다 본 혜안이다.
초식동물에게 동물 뼈 가루를 먹여 하루속히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욕심이 도리어 그 소를 미치게 했고, 그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고 있다. 아니 뇌가 송 송 송 뚫어져 눈만 멀뚱멀뚱 뜨다가 죽으라 하고 있다.
누가 먼저 미치게 하는지 사람들은 러시안 룰렛게임을 즐기고 있다.
욕심 없이 소에게 풀을 뜯기게 하고 일도 하면 별 문제 없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힘들게 일하고 온 우리 집 소에게 소우리가 답답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소를 풀어주어 혼이 많이 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고마운 소가 달구지를 매달고 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혹여나 달구지가 무거울까 내려서 같이 걸어갔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 다가온다.
그 소가 형님들 수업료를 위해 팔려가는 줄 모르고 눈물 흘리며 우시장으로 향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안 좋은 추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는 광우병이 없었다.
육골 분 사료도 없었고 일하지 않는 소도 없었다.
그 소는 한평생 일하다 사람들 교육에 헌신했고 마지막 살덩이마저 무주상보시하고 갔다.
청소년들도 답답하단다.
오직 공부만 하란다.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아니 사교육의 새벽까지 눈치 보지 말고 우정은 생각지도 말고 배려도 생각지도 말고 친구는 옛말이니 아니 경쟁의 대상일 뿐이니 공부만 하란다.
그것도 모자라 너무 공부하다 미치기 전에 광우병 걸린 쇠고기 급식의 공포까지 감내하란다.
아! 우리들의 대한민국, 어떻게 호국하라는 것인가!
나는 불자이다.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범세계적인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불교가 좀 더 이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이끌기를 바란다.
육식을 거부하는 종교와 정치체제는 불교공동체밖에 없다.
이거 오늘의 희망이다.
그렇게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왜 이야기 하지 않는가.
경쟁을 벗어나 창의와 상상력을 키우는 자유롭고 인간적인 교육을 왜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맞는 대안교육을 말하지 않는가.
오늘의 한국불교에 부처님의 자비는 있는가!
나는 오늘도 촛불을 들었다. 나이 40중반에 철부지라면 할 수 없지만 내 나름 부처님의 뜻이라 확신하고 자비라 생각하고 거리를 자그맣게 밝혔다.
내일은 촛불보다는 연등을 밝혀야겠다.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어둠을 밝히는 연등을 환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 우리 불자의 역할 아닌가.
이 우리들의 대한민국, 당신들의 말대로 광우병나라 쇠고기 수입에다 학원자율화조치에다 대운하에다 자유무역에다 공기업 민영화에다 모든 규제의 철폐 등으로 모든 농민과 사회적 약자를 거리에 내몰아 국력 낭비하는 이 당신들의 대한민국 국가권력은 최소한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지켜야 할 기본 자질은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
이 우리들의 한국불교, 모든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괴담이라 말씀하시는 당신들의 한국불교, 연등축제를 문화재로 화석화할 게 아니라 중생 살리자는 연등 문화재를 만들 법력은 없는가!
불자들은 우리들의 대한민국 중생들에게 최소한 자비심은 보일 의무는 없는가?
댓글목록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답답합니다. 선배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가난했던 80년대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것 같습니다.개인의 부귀가 아니라 역사,민족.통일을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였던 보살이었던 적이 제게도 있습니다. 작은 힘이 모여 큰힘이 되고 작은 생각이 모여 대오각성 하겠죠. 대불련도 이제 꿈틀됩니다.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