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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예수님의 인도,티벳 불교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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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無碍 작성일2004.12.24 조회5,4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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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자료
A:  기원전 3세기의 "뷰론"은 알렉산더대왕의 인도원정에 참가하였고(B.C 326)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를 하였다. (알렉산더대왕은 인더스강유역에 4개의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건설 하였으며  해로와 육로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및 발칸반도,지중해 연안지역과 경제, 문화, 종교 교류가 활발하였다.
   
B:  기원 230년경 "오리게네스"가 구약성서의 에제키엘서의 註를 달면서 "당시 영국 프랑스에서는 이미 켈트족의 드르이드 승려와 함께 불교의 가르침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 후 크리스트교가 전파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드르이드 승려들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수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겐지"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중에는 많은 불교신자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C:  또 다른 증거는 최근 유럽에서 아주 오래된 불교사원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노산바란드에서 간다라 불상조각이 발견되고 스웨덴의 여러곳에서 불상이 발굴되었다.
 
D:  B.C 100년에서 기원후 68년 사이에 유대교의 한 분파라고 생각하는 엣세네파의 수도원이 있었던 쿰란에서 수도원유적과 동굴에서 아람어와 헤브라이어로 된 고문서 "사해 두루마리"가 1947년 발견되었다.
    엣세네파의 활동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역사학자 요세포스의 저술이나 철학자 피롱의 저서를 보면 사해의 서안에 약4천명의 엣세네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인도에서처럼 "물에 의한 정화의식"을 하였고 불교의 출가승단처럼 엄격한 식사 규칙과  독신주의자이며 채식주의자이고 개인 재산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에 따라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받치는 예루살렘의 신전 예배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유대교는 사회생활 속의 체제종교로서 사회를 떠나서 폐쇄적인 수도원 생활 전통은 없으므로  엣세네파는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의 출가수행승단과 똑같은 금욕적 생활을 했다고 생각 된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엣세네파의 신자였고,    신약성서에도 예수님이 엣세네파를 비난한 기록이 없다.)

E:  그노시스파는 1∼2세기 헬레니즘시대에 이집트,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에 널리 퍼져 있던 크리스트교의 일파로서 영지(靈知)主義 또는 신비적主知主義라고 부른다.(직관에의한 깨달음을 중시하는 禪불교의 영향인듯 *그노시스=깨달음)  그들의 세계관은 靈과 물질로 대립된 이원론을 주장하였다.(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인것 같다)
    그노시스파 신학은 불교사상과 조로아스터교, 그리스철학이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사상에 영향을 주어서 혼합되어 나타난 초기 기독교 신학이라고 볼수 있다.  그노시스파 신학은 불교의 영향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인생을 苦海로  보고  윤회와 인과응보 사상을 강조한다.  특히 파시레니스는 業(행위)에의한 윤회와  無我 사상을 주장하였다. 클레멘스는 "신의 로고스는 기독교도 뿐만아니라 이교도에도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6. 유대교의 구약성서와 크리스트교의 신약성서에 대한 참고사항
 
(1) 유대교의 구약성서
 
  1) 구약성서는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전해 오던 것을 모아서 39편으로 편집한 全書이다.
  2) 구약성서에 분류되어 있는 書名은 원래 없었으며, 같은 내용이 상반되는 것도 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1장과 2장4절)
  3) 구약성서는 역사적 순서에 따라 편집된 것이 아니며, 순수한 종교 내용만이 아니므로 율법서, 역사서, 예언서, 기타書로 내용을 분류할 수 있다.
  4)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는 구약성서를 모체로 생겨났지만 종교간 갈등이  크며 구약성서도 약간씩 다르게 편집되어 사용되고 있다.
  5) 구약성서에 있어서 창조주에 대한 神의 명칭도 처음에는 "엘로힘" 또는 "야훼"로  전해졌던 것이 16세기 이후 神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하여 야훼의 자음 과 아도나이의 모음을 결합시켜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다.
  6)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세기 신화는 약소민족인 유대인(헤부르족)들의 신화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최초 이동하기 전에 이웃에 있었던 강대민족인 수메르족의 창조신화를 도입 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7)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 대홍수도 全 세계적인 대홍수가 아니라, 1929년 에 레나드위리경이 발굴한 결과의 보고서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 지역의 국지적인 대홍수였다고 확인 되었다.
  8)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는 원래 "사막의 신"으로써 진노하고 저주하는 공포의  神에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모세가 유대민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시나이 산에서 여호와는 유대민족에게 약속한 땅을주고 지켜주기로 하고 유대인은 여호와의 선택 받은 민족으로 여호와만을 민족의 유일신으로 믿고 율법을 준수할 것을 계약하였다.
  9)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교에서의 메시아에 대한 신앙은 현재까지도 존속되고 있다.
  10) 유대교와 크리스트교는 모두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인격신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는 종말론적 신앙의 종교이다.

(2) 크리스트교의 신약성서와 예수님의 숨겨진 청년시절

  1) 크리스트교의 신약성서
     
      크리스트교의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한 권의 책이 아니었다.  유대교의 구약성서를 모체로 해서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크리스트라고 믿고 예수님 사후에 신약성서를 편집한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50년에서 150년 사이에 개별적으로 만들어져 전해오던 문서를 그 후(로마시대) 종교회의에서 편집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신약성서는 27편의 문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소개하면 복음서4편, 사도행전1편, 바울의 서한13편, 그밖의 서한8편, 요한 계시록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 제일 중요한 문서는 4편의 복음서인데 신약성서 전체의 절반이 약간 모자라는 분량 이다.  신약성서에 편집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전도활동과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탄신일과 청년시절(12세 유월절이후 29세 까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예수님에 대한 탐구는 18세기 말경부터 19세기의 비판신학을 성행하게 하였으며 20세기의 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예수님의 청년시절에 대한 "토마스복음서"와 고대불교필사본 "이사(예수)傳" 발견
     
      지금까지 학계에 밝혀진 내용으로서 예수님은 13세 때 인도인 "라반나"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대상(隊商)을 따라서 사막을 건너 14세에 인더스강 유역의 신드을 지나  인도와
티벳으로 유학을 갔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처음에 4년간  주거나웃, 라자그리하(석가모니 성도지 부다가야 근방), 베나레스(불교 초기 설법지)에서  "라마스"에게 베다경전을 배우고 "우드라카"의 제자가 되어 인도의학을 배웠으나 브라만교의 신분차별제도(카스트제도)를 비판하고  주거나웃을 떠나 석가모니의 고향인 카필라바스투(카필라성)로 갔다는 것이다     
      예수님(불교문헌이름"ISSA")은 자비와 평등을 가르치는 불교에 귀의하여 6년간  팔리어를 배우고 불교경전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바라타 아라보"에게 불교를 배우고 그 후 티벳의 랏사에서 "비차파치" 와 "맹그스테"에게 불교를 공부했다고 한다. 

24세 때 라호르에서 친구 아자이닝과 작별하여 낙타를 타고 카시미아를 거쳐 대상과 함께 귀국 길을 떠나 페르시아지방과 이집트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29세에 예루살렘으로 귀국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의 고대 필사본 "토마스 복음서"와 불교의 고대 필사본 "이사(예수)傳"이 발견되어 그 내용이 서로 통하므로 예수님의 숨겨진 청년시절과 예수님의 보다 정확한 생애와 가르침을 알수 있게 되었다.
 
 ★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3∼4세기에 만들어진 13개의 그노시스파 성서사본과 콥트어로 번역한 주석서가 발견되었는데 그중에 고대(220년) 필사본 "토마스 복음서"가 나왔다.
  "데드모 유다 토마스"가 기록한 이 복음서는 프랑스 학자 "필립 드 슈아레"의 연구 저서(토마스에 의한 복음서)로 세상에 밝혀졌다.  토마스의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114항목으로 되어 있다.  슈아레는 토마스복음서가  예수님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임을 입증하고 교회에서 공인한 신약성서가 예수의 말씀을 왜곡했다고 주장 했다.
 토마스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마음 속에 있다."는 말씀은 불교의 佛性內在의 가르침과 같다. 토마스 복음서는 예수님의 인도 유학과 불교와 크리스트교의 교류관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한양대학교 민희식 교수가 편찬한 "법화경과 신약성서" 속에 있는 "토마스 복음서 와 예수" 참고.  1986년 불일출판사 발행)
 
★  제정 러시아 기자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1887년 티벳의 라다크지방의 레에 남쪽  40km 지점의 히미스사원에서 고대 불교인의 티벳어로된 필사본을 발견하였는데 이 책에 분명히 예수님께서 청년시절에 인도와 티벳에서 유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라는 책이 1894년 프랑스어로  여덟 번 출판되었고 그후 미국과 영국에서 영어로, 그리고 독일어, 에스파냐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로 번역 출판 되었다. -(책 속에서 이사(예수)傳 전문 14장 소개)
  (우리나라에서는 한양대학교 민희식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프랑스어판을 1986년 10월 26일자 주간지 중앙에 일부 소개한 뒤에 많은 관련 도서들이 번역 출판되었다.)
     
 ★  1922년 스와미 에베다난다(인도출신, 영국에서 철학교사)는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주장한 예수님의 청년시절에 인도와 티벳에서 유학했다는 히미스사원의 고대 불교 필사본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 곳에 찾아 갔다.  아베다난다는 라마승이 티벳어로 된  고대 필사본을 보여주고 "원본은 팔리어로 기록되어 라사근처  말보(Marbour)의 한 사원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번역하는 일도 도와 주었다고 한다. 
 
 ★ 두번째 발견자 아베다난다는 히미스사원에서 베껴둔 원문의 일부(4장까지)와 함께 답사 기록을 "캐시미르와 티벳 여행"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다.  예수님(불교문헌의 이름: 이사)에 대한 불교 고대 필사본 기록은 예수님 사후 3∼4년에 이스라엘 隊商들의 증언과 예수님을 알고있는 인도,티벳 스님들에 의해 14장 224개 귀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세번째 발견자는 니콜라스 로에리치(러시아 왕립고고학회 교수)이다.  로에리치 탐험대는 1924년 시킴에서 출발하여
펀잡, 캐시미르를 거쳐 1925년 8월 26일부터 9 월 19일까지 라다크의 수도 레에 체류하면서 근처의 히미스사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예수(이사)님에 대한 불교 고대 필사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로에리치교수는 예수님에 대한 불교의 고대기록을 1925년에 집필하여 "히말라야"와 "알타이 히말라야" 라는 저서에서 소개하였다.
 
 ★ 네 번째 목격자는 "엘리자베스 카스파리"(스위스 음악교수, 국제몬테소리협회 부회장)와 "클라렌스 가스끄"(미국인, 세계신앙인 친선협회 원장)여사 인데 1939년 여름에  티벳의 히미스불교사원에서 라마승이 "예수님이 청년시절에 인도와 티벳에  왔었다"는 고대 필사본을 보여줘서 목격하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후 엘리자베스 카스파리 교수는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서미트대학에서 공개토론회와 회견을 자청하여 많은 사진 자료를 제시하며 증언을 하였고 1984년에 엘리자베스 클레어가 "예수님의 잃어버린 세월(The Lost of Jesus)"이라는 책을 서미트대학에서 출판하는데 협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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