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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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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태진 작성일2004.04.07 조회3,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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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맛갈스럽고 담백한 이야기인것 같아 소개합니다.

[일사일언] IMF가장 합격 먹었네


IMF 시절 30대 후반의 창창한 나이에 자고 일어나니 부도가 났다. 우선 60평 아파트에서 13평으로 살림을 줄여 빚잔치를 했다. ‘웬수’ 같은 신용카드는 다 잘라버렸다. 야, 이제 뭐 할까. ‘건축기사1급’ 시험이나 봐요. 와이프한테 3만원을 얻어 책방에 갔다. 5과목이니 5권은 사야되지만 돈이 없으니. 종합문제집 하나 샀다. 부지런히 집으로 와 초등학교 1학년 딸 점심 해 먹여 학원 보내고 10년 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시험일은 한 달 남았다. 떨어지면 집 나가야 된다. 처자식 볼 면목이 없으니. 저녁에 딸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야, 오늘은 뭐 먹을래. 골라.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카레. 저녁 먹으면서 소주 한 병 까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와이프 얼굴 보기도 겁나고. 아침에 와이프가 출근 준비에 바쁜 눈치다. 눈 감고 누워 있다가 와이프가 출근하면 바로 일어나 딸 아침 준비를 했다. 식탁 위에 2000원이 놓여 있다.

야, 화영아 아침 먹어라. 아빠, 공책 사게 2000원만. 뭐라고? 내 담뱃값. 학교 보내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시간마다 길거리에 나가 장초를 찾아헤맸다. 더 이상 와이프한테 손 내밀긴 미안하고. 시험장에 갔더니 필자보다 어린 감독관이 약올린다. 아니, 왜 이제야 오셨어요. 글쎄 말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발표날 새벽 가족 몰래 자동 응답 전화를 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딸에게 말했다. 아빠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전화해 봐라. 합격했대 아빠. 그래? 뭐 대단한 시험이라고. 쫓겨날 뻔했다.

(이용재·건축비평가 겸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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