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소식/조계종 법전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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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간사 작성일2006.05.12 조회3,209회 댓글0건본문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법어 내려
전국 100여개 선원, 2,200여명의 수행납자 결제
<img src="http://www.buddhism.or.kr/pds/board/images/20060511/200605111147344589.jpg">
대한불교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는 불기 2550년 5월 12일(음력 4월 15일) 夏安居 結制日을 맞아 전국의 修行衲子들을 분발토록 격려하는 결제 법어를 내렸다.
하안거 결제는 하루전날인 11일(목) 저녁, 결제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각자의 소임을 정하는 용상방(龍象榜)을 작성하고, 12일(금) 입제 당일 오전 10시경 사찰별로 방장스님 등 큰스님을 모시고 결제법어를 청한 후 본격적으로 결제에 들어간다.
조계종에서는 매년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천 2백여 명의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이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여 수행에 매진하고 있으며, 일반사찰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수행에 매진하게 된다.
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승려들이 일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vrsvs)의 역어로 인도의 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 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에서만 수행하였으며, 우기에는 비 때문에 도보여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외출 중에 이들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다.
다음은 법전 종정예하의 하안거 결제법문 전문이다.
진정한 말후일구(末後一句)는 무엇인가
- 2550년 하안거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선사 결제법문 -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발우를 들고서 법당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던 설봉스님은 이 광경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서 곧장 방장실로 되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과 함께 살던 암두스님은 이 일을 전해 듣고서 또 한마디를 보태는 것이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그러자 덕산스님은 그 말을 듣고서 암두스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대가 노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신의 뜻을 덕산스님에게 열어 보였습니다.
이튿날 덕산스님은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의 법문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큰방 앞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노장이 이제 겨우 말 후구를 알게 되었구나. 이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
덕산탁발(德山托鉢) 공안에는 4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덕산선사가 제자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방장실로 되돌아간 부분입니다.
정말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까?
둘째, 덕산선사가 과연 말 후구를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말 후구를 모르고서 어떻게 당대의 대선지식이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입니다.
셋째, 암두스님이 은밀히 자신의 견처를 내보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입니까?
넷째,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말 후구를 알았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인 암두스님이 스승인 덕산스님보다 안목이 더 나았다는 것입니까?
따라서 이 공안은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하거나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이 독약과 같아서 상신실명喪身失命하게 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소견을 달아 조사의 참뜻을 묻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량 분별인 유심有心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無心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을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쳐부수고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고인의 입각처立脚處를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공안을 제대로 바로 알기만 한다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공안을 일시에 다 타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출격장부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서 천하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살활자재殺活自在할 것이니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결제대중들이여!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보니 최초의 일구를 안다면 최후의 일구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구나 최초의 일구 모두 궁극적인 일구 즉 말 후구는 아닙니다. 이들 공안을 제방에서 흔히들 여러 가지로 논해왔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일체 묻지 않겠습니다. 덕산 삼부자가 주고받은 문제의 그 말 후구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참으로 그 말 후구末後句인가 하는 것을 이번 하안거 결제 한철동안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각월중계 斫却月中桂하니
청광전갱다 淸光轉更多로다
호리구병적 狐狸俱屛迹하고
사자분금모 獅子奮金毛로다
달 속의 계수나무 베어내니
밝은 빛이 더욱 많아짐이로다.
여우와 살쾡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자는 황금털을 뽐내는구나
불기2550(2006)년 하안거 결제일에
전국 100여개 선원, 2,200여명의 수행납자 결제
<img src="http://www.buddhism.or.kr/pds/board/images/20060511/200605111147344589.jpg">
대한불교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는 불기 2550년 5월 12일(음력 4월 15일) 夏安居 結制日을 맞아 전국의 修行衲子들을 분발토록 격려하는 결제 법어를 내렸다.
하안거 결제는 하루전날인 11일(목) 저녁, 결제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각자의 소임을 정하는 용상방(龍象榜)을 작성하고, 12일(금) 입제 당일 오전 10시경 사찰별로 방장스님 등 큰스님을 모시고 결제법어를 청한 후 본격적으로 결제에 들어간다.
조계종에서는 매년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천 2백여 명의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이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여 수행에 매진하고 있으며, 일반사찰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수행에 매진하게 된다.
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승려들이 일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vrsvs)의 역어로 인도의 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 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에서만 수행하였으며, 우기에는 비 때문에 도보여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외출 중에 이들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석가모니가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다.
다음은 법전 종정예하의 하안거 결제법문 전문이다.
진정한 말후일구(末後一句)는 무엇인가
- 2550년 하안거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선사 결제법문 -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발우를 들고서 법당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던 설봉스님은 이 광경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서 곧장 방장실로 되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과 함께 살던 암두스님은 이 일을 전해 듣고서 또 한마디를 보태는 것이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그러자 덕산스님은 그 말을 듣고서 암두스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대가 노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신의 뜻을 덕산스님에게 열어 보였습니다.
이튿날 덕산스님은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의 법문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큰방 앞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노장이 이제 겨우 말 후구를 알게 되었구나. 이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
덕산탁발(德山托鉢) 공안에는 4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덕산선사가 제자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방장실로 되돌아간 부분입니다.
정말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까?
둘째, 덕산선사가 과연 말 후구를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말 후구를 모르고서 어떻게 당대의 대선지식이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입니다.
셋째, 암두스님이 은밀히 자신의 견처를 내보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입니까?
넷째,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말 후구를 알았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인 암두스님이 스승인 덕산스님보다 안목이 더 나았다는 것입니까?
따라서 이 공안은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하거나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이 독약과 같아서 상신실명喪身失命하게 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소견을 달아 조사의 참뜻을 묻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량 분별인 유심有心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無心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을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쳐부수고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고인의 입각처立脚處를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공안을 제대로 바로 알기만 한다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공안을 일시에 다 타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출격장부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서 천하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살활자재殺活自在할 것이니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결제대중들이여!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보니 최초의 일구를 안다면 최후의 일구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구나 최초의 일구 모두 궁극적인 일구 즉 말 후구는 아닙니다. 이들 공안을 제방에서 흔히들 여러 가지로 논해왔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일체 묻지 않겠습니다. 덕산 삼부자가 주고받은 문제의 그 말 후구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참으로 그 말 후구末後句인가 하는 것을 이번 하안거 결제 한철동안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각월중계 斫却月中桂하니
청광전갱다 淸光轉更多로다
호리구병적 狐狸俱屛迹하고
사자분금모 獅子奮金毛로다
달 속의 계수나무 베어내니
밝은 빛이 더욱 많아짐이로다.
여우와 살쾡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자는 황금털을 뽐내는구나
불기2550(2006)년 하안거 결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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