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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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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은정 작성일2006.05.04 조회3,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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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큰스님은 제자 만공을 데리고 탁발을 나가곤 했다.
어느 해 여름, 두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한 곡식을 걸망에 짊어지고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탁발을 하느라 돌아다녔으니 몸은 고단하고 걸망은 무거웠다.
젊은 만공이 먼저 지쳐 경허 큰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스님, 걸망이 무거워서 더 걸어가기가 힘듭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경허 큰스님이 제자 만공에게 말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버려라.”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버리라니요?”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아니면 결망을 버리든지 하란 말이다.”
 “에이 참 스님도······. 하루 종일 고생해서
  탁발한 곡식을 어찌 버리란 말씀이십니까요?
  아 그리고 무거운 건 무거운 건데 그 생각을 어찌 버립니까요?”

경허 큰스님은 휘적휘적 앞서가기 시작했다.
제자 만공이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갔다.

 “스님, 정말 숨이 차서 그렇습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저 마을 앞까지만 가면, 내 힘들지 않게 해줄 것이니 어서 따라오너라.”

제자는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스승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마을 앞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고
그 근처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이고 스님들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그 아낙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어버리는 게 아닌가.

에구머니! 아낙은 비명을 지르고 물동이는 박살이 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삽을 들고
팽이를 들고 “저 중놈들 잡아라!” 외치며 달려왔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자 만공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죽어라 뛰었다.
경허 큰스님은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달렸을까.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쫓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솔밭에서 경허 큰스님이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너도 용케 붙잡히지 않고 예까지 왔구나.”
 “스님, 속인도 해서는 안 될 짓을 왜 하셨습니까요?”
 “그래, 그건 그대 말이 맞다. 헌데 도망칠 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예에?”

그 순간 만공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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