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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06.09.22 조회3,2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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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밤 2시쯤 뭔가 따끔한 느낌이 들어서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작은 귀뚜라미 한마리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귀뚜라미가 물었나?' 하고 피식 웃었는데, 잠시 생각을 해보니 경험상 지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이불을 들쳐봤더니, 한뼘이 넘는 빨강 다리를 넘실대는 지네가 기어나왔다. 놀란 지네는 불단뒤로 기어가는데... 순간 고민이 되었다.
             
              '내가 꼭 저 지네를 잡아서 방밖으로 내보내야 하나?'


한평도 안되는 방에서 도량석 목탁이 울릴 때까지 앉아있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임의로 내 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지네에게 내 방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아닌가? 내가 내 업보따라, 인연따라 물리는 것인데, 그냥 받아들이자.'


결국 지네는 지네대로 나는 나대로 살기로 하였다. 내친 김에 지네가 포도를 먹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나서, 조그만 접시에 포도를 담아 방에 놔두었다. 내 공간까지 온 손님에게 최상의 안락함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젯밤은... 혹여나 지네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왔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에게 놀랄까봐, 정신을 가다듬고 거의 부동의 자세로 잠을 취했다.

몇 년전에 은사스님 방 창문에 벌이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그 해 겨울, 스님은 벌통을 떼버리지 못하시고, 덧창문을 닫는 것을 포기하고 겨울을 나셨다. 보통 집같으면 그럴 수 도 있는 일이겠지만, 한칸 토굴에 여기저기서 찬바람이 들어와 살을 에는 그런 환경에서... 덧창문은 사실 어마어마한 방패막이 된다. 가만 있어도 코가 시린 방에서 덧창문을 포기하신 스님...

올해도 스님 방 창문에는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조금은 순하고 늘씬한 벌들이 망창에 의지해서 집을 지었다. 여름동안 스님께서는 망창에 꿀을 발라주시기도 하고, 그릇에 꿀을 담아 벌집근처에 매달아 놓으시기도 하셨다. 지금도 부지런히 애벌레를 위해 집을 짓는 벌들... 아마 올해도 스님께서는 덧창문을 포기하시지 싶다.

어제 저녁, 뒷간에 들어간 현현스님이, 추운 겨울을 앞두고 목숨걸고 달려드는 모기들이 배부르게 다 먹고 갈때까지 기다렸다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가을도, 저 익어가는 열매처럼 함께 영글어 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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