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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에서의 하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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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범 작성일2009.06.30 조회3,19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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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거창에서의 하루이야기

 

 




  경남 거창에 자리하고 있는 금룡사(주지 준용스님)의 석조여래입상 부처님을 지난 90년 봄 대구와 대불련의 친구들과 함께 처음 찾아 친견한 다음, 19년이 지난 엊그제(6월 27일) 다시 그들과 같이 찾아뵈었다.

  참 모질게도 게으름의 소치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제자로서의 삶도 그 정신도 아련한 모습이 작금의 실상이니 말이다. 그 이면에는 많은 애욕과 욕망의 굴레를 쌓고 또 쌓은 나의 삶의 모양일 게다.

  아무튼 지금에서라도 준용스님과 법경스님을 통해 다시 여래부처님을 친견한 것만으로도 나의 업장이 조금이라도 ... 해졌지 않을까 하는 바람뿐이다. 부산에서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온 다음 부산의 어젯밤에 씨름한 속을 달래기 위해 냄비우동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거창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마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곰탕할머니로 유명한 현풍과 대가야의 역사를 잇고자 하는 고령에서 다시 88고속도로를 따라 거창에 도착할 무렵 차 안에서 눈을 떴다.

  실제로는 간밤 꿈에서 본 가조면의 풍광을 보기 위해 눈을 뜨고 자연스레 뻗어 내린 산줄기를 보면서 온화하게 자리한 가조의 마을 전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으뜸이다. 그 옛날 다리를 다친 학(鶴)이 가조면 논밭에서 다리를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가조온천은 지난날 해인사에서 머물 적에 큰 불사를 하고 스님과 행자들이 같이 피로를 풀 겸해서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88고속도로에서 거창읍내로 들어서는 전나무 가로수와 길가의 작약 밭(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도 초행길의 방문객에게는 이색적인 풍광이기도 하다. 그 초입(고속도로IC)에서 여래부처님이 계신 양평동을 물끄러미 보는 재미 또한 부처님이 계신 곳을 미리 아는 나만의 추억이다. 그래서 거창에 올적마다 참으로 새로운 삶의 충전을 갖기도 한다. 여기에는 그 옛날(85~89년)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 순수하기도 했고, 모두 다 그때 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일 게다.

  뒤 늦게 도착한 것이 미안해서 상한이에게 다들 모인 위치를 알려고 전화를 하니 굳이 거창 터미널로 마중을 온다나. 얼마 후에는 병호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차창 너머로 수인사와 함께 문을 열고 가방을 앞좌석에 얻고 뒷문을 쭉 여니, 스님들이 계신 것이 아닌가? 그때 잠시 당황하면서, 목례 아닌 이상한 인사를 하고(실제 병호가 ‘빨리 타기나 해여’라고 했음) 앞좌석에 올랐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차의 진로였다. 병호가 차를 금룡사 쪽으로 가질 않고 거창 읍내로 쏴~아하고 몰았다. 어~ 어 하다가 거창다리를 넘은 병호의 차는 군청 앞 3층 석탑을 지나 제주냉면 집에 도착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린다나.

  이윽고 선환이가 냉면집에서부터 전화기를 손에 잡고 나오기에 악수를 먼저 했다. 준용스님과 법경스님과 같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방안에 자리한 수경, 복희와 딸 효정, 종희와 정숙이 먹을거리를 정하느라 하하하며 만남의 즐거움을 서로 토닥거렸다. 준용스님께서 선용 큰스님은 언제 오신다고 묻지 않는가? 함께하던 친구들이 “예, 김 선생님하고 같이 온데요”로 맞장구를 쳤다. 먼저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선택하는 것도 입씨름, 그것도 반가움의 일가일 것이다. 잠시 후 선용스님과 김선생(아림사에서 올여름 한문학당 선생님)이 도착하자 목례와 수인사를 마친 우리는 냉면 한 그릇씩을 후루하며 비웠다.

  때맞추어 병호가 오늘 일정은 이미 다 정해졌으니까. “그렇게 하지 뭐”하자. 선용스님께서 거창군 삶의 쉼터도 같이 가보자고 제안해, 아림사를 들어서 쉼터에 가는 일정으로 수정되었다. 각기 차를 나눠 이동한 일행은 아림사 입구에 도착할 때쯤 상한이 아들 형진이가 선용스님 차 옆으로 지나다가 우리와 마주쳐서 창문을 열고, “형진이 너 어딜 가” 하니 “할머니 집에 만화 영화 보러간다(상한이 집 TV는 실제로 공중파 방송만 나오기 때문임)”며 줄행랑을 쳤다. 형진을 뒤로하고 아림사에 도착한 우리들은 법당 참배를 하고 계익당(戒益堂=요사채)로 건너와 선용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수박과 파프리카 그리고 수경이가 연신 맛있다고 자랑한 곶감을 먹고 배부른 포만감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때에는 정숙 씨가 아들 진우와 딸 세든 이와 같이 들어오고, 그리고 상한이 아들 형진이와 형일 그리고 은정 씨가 아림사로 와서 일행과 같이 자리를 했다. 우리들이 스님 방에 있는 탱화 그림과 여러 가지 그림을 옆 눈으로 감상할 때, 정숙 씨가 옥수수를 달라고 종희에게 부탁하다가 새삼 심트렁 같은 사랑노름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냉면 먹을 때, 선용스님께서 쉼터 어르신들을 위해 고기반찬 대접하는 이야기를 시작해 종희가 돼지 한 마리보다 돈을 드리는 것이 낫다고 한 이야기가 50만원을 선용스님께 드리려 쉼터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종희 아들 진우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딸 세든이 명랑한 말투와 솜씨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다시 각기 소개와 생활이야기가 다 떨어질 무렵, 쉼터로 가자는 선용스님의 말씀에 따라 마당으로 나와 수경이가 가지고 온 디카사진기로 다 같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때 병호가 내 머리를 가지고 ‘훤하다’ 등등으로 가지고 놀며 영각스님과 인사를 하고 다시 찾기로 하며 아림사를 떠났다.

  거창 읍내를 다시 돌아 안의 가는 길목에 위치한 거창군 삶의 쉼터에 도착했다. 이곳의 관장으로 계신 선용스님이 성큼성큼 먼저 가서 쉼터의 출입구 문을 열었지만, 보안용 장치가 해독을 잘못하여 입구를 여러 번 찾아 헤매기를 하다가 삐이익 하는 출입구 문소리를 들어 일행 모두는 쉼터 안을 관람반 어림짐작반으로 5층 건물을 돌았다. 준용스님과 맨 먼저 지압실에 들어가 안마기를 타고 나와 현대식으로 잘 지워진 쉼터의 계단을 따라 올라갈 무렵, 보안회사 직원이 숨찬 모습으로 우릴 찾아왔다면 원망의 눈초리를 짚였다. 선용스님이 나 관장스님인데 인사를 하자 보안업체 직원이 의심의 회초리를 내려놓고 풀었지만, 이미 건물 밖에는 경찰까지 와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스님이 다시 경찰에게 손인사로 사건 아닌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다시 쉼터 입구로 나와 기념촬영과 일정을 논의하다가 선용스님을 먼저 가시도록 모시고 난 후에 금룡사로 이동했다. 이 일정은 순전히 늦게 도착한 나의 불찰로 진행된 일정이었다. 쉼터에서 종희는 다른 일이 있다며, 우리와 헤어지고 정숙 씨도 다시 보자고 하며 곁을 떠났다. 선환이 차를 타고 황강(黃江)의 고통도 곁들이면서 금룡사에 도착했다. 

  먼저 참배를 한 일행은 금룡사 그늘 밑으로 파고들고, 나는 여래부처님을 참배했다. 현재 거창군 거창읍 양평동 479-1번지 금룡사에 위치한 석조여래입상(居昌陽平洞石造如來立像)은 1963년 1월 21일 국가에서 보물 제377호로 지정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금양사(金陽寺) 혹은 노혜사(老惠寺)라고 부르는 절에 모셔졌다고 한다. 불상의 주위에 주춧돌이 남아 있고, 불상 앞에 석등 재료가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 사찰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전체 높이 3.7m의 거대한 석조상으로 따로 마련된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형태이다.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모자 모양의 천개(天蓋)는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불상의 불두(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며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모습이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눈·코·입 또한 솜씨있게 처리되어 있다. 가슴은 당당하지는 않지만 신체의 굴곡이 충실히 드러났으며, 날씬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얇게 걸치고 있는 옷자락에는 U자형의 옷 주름이 흐르다가 두 다리에서 긴 타원형을 그린다. 오른손은 내려 옷자락을 잡았고, 왼손은 배에 대어 검지손가락만 펴고 있다. 두 팔은 몸에 붙어 있어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발밑에는 대좌에 꽂기 위해 만들었을 뾰족한 촉(觸)이 나와 있는데, 대좌는 지금 윗부분만 보이며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원통형의 신체, 굴곡진 허리와 두 다리 등에 양감이 잘 표현된 통일신라 후기의 우수한 불상이다. 원형으로 솜씨있게 처리된 얼굴을 제외하고는 긴장미가 줄어들었지만 대체적으로 세련미가 드러나는 석조여래입상 부처님이시다.

  20년 남짓한 세월동안 금룡사의 입구도 바뀌어 뒤쪽 편으로 해서 차로 마당까지 오를 수 있게 됐다. 마당에는 예쁜 소나무가 자리하고, 초파일에 사용한 코끼리 3마리도 금룡사를 지키고 있었다. 여래부처님을 배경으로 여러 차례 사진을 찍느라 고생한 수경의 보람이 다음날부터 추억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감문비나무의 노란 꽃을 옆에 두고 선 여래부처님의 얼굴은 서양의 빛줄기에 엷고 밝은 미소를 우리를 끝까지 대해 주는 것 같아 마음까지 포근해졌음은 물론이다. 복희씨가 ‘저기 산딸기다“라고 왜 치자 선환이가 얼른 90도 경사진 곳을 내려가 산딸기 둘 알을 따다가 복희씨에게 헌복(獻馥)하는 진풍을 본 준용스님께서 ‘정성으로 한다’고 할 적에 ‘달이 아니더라도 딸기라도 따주어야지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선환이는 4개월 전부터 직접 약속한 일이 있다며, 가족과 같이 먼저 경북 상주로 출발했다. 우리는 다시 준용스님과 법경스님을 모시고 합천댐 안쪽의 봉산으로 길을 재촉했다. 열어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을 안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봉산가는 길은 언뜻 멀게 느껴졌다. 완전히 밤이 된 풍경을 안고 봉산에 도착한 일행은 20년 전부터 거창읍내에서 슬기둥 풍물연습실을 운영한 신수용 선생이 직접 운영하는 새터식당에서 힘이 생긴다는 그 음식으로 저녁을 하고 곡차까지 두잔 세잔 꼴깍 마셨다. 2층에 마련된 찻집에서 금매화차와 오미자차 그리고 상한의 두드림의 음악을 배우고 즐기며 거창이야기가 끝이 났다.

  가뭄이 들어 합천호에는 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거창이야기는 다시 그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거창터미널에서 상한의 차표 대접을 받고 정숙 씨가 마련해준 1시간 동안의 콘서트하우스 인(IN)에서의 비밀(파스타:과자와 아이스크림 쌓은 것)은 심미(深味)와 농인(農人)만이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2009년 초여름 토요일날(6월 27일) 번팅(갑자기 마련된 미팅)은 여기에서 마치지만 서울로, 대구 등으로 각기 삶의 쉼터로 돌아가지만, 거창에서의 하루는 영원히 우리들의 미래를 풍요롭게 하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느낌과 체감지수는 오래오래 뇌리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구조 이지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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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지복님의 댓글

이지복 작성일

마음이 오가는 곳.
그곳에 내가 있고,
나의 나누어진 일부가 남아 있는 것 같네요.
즐거운 기억
나도 만들고 싶네요.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들이
너무 반갑고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잘 살고있는 것 같아
더욱 반갑고
아직도 넘치는 정이 여전해
그 옛날이 그리워 지네요.
우리들의 인연은
그렇게 그렇게
맺어진것을
모두 함께
진리를 향해
한발짝 한발짝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갑시다.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
언제나
그옛날
누부야 이고 싶네요!!

홍경희님의 댓글

홍경희 작성일

마등거사 오랜만이데이~~ 자주~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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