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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불교포커스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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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혜장 작성일2010.10.13 조회2,89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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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총량이 바뀔 것을 믿지 않는다 
 
- 마이클 샌델 지음/강명신 옮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태풍이 지나간 논에 벼들이 무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심하게 쓰러진 곳은 일으키기를 아예 포기해버린 듯

물을 빼주지 않은 논에서 쓰러진 벼들이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며칠 뒤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한 농부가 방송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쳐서 이삭을 무겁게 키운 벼들이 바람에 잘 쓰러지는 것과 달리

유기농법으로 키운 벼들은 이삭 수는 적어도 바람을 타고 견딜 줄을 안다는 것이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니 그 말의 진실 여부를 가릴 능력은 내게 없지만

벼에게도 농부에게도 욕심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껏 몸을 불린 벼는 넘어지기 쉽고 넘어진 뒤 다시 일어세우기가 어렵지만

몸이 가벼우면 잘 쓰러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으니 세울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의 저런 삶의 이치에 비춰보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믿고 사는 인간의 삶의 이치가 어떠할지는 짐작할 만하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미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하니

이번 책은 국내에 소개되는 저자의 두 번째 저작인 셈이지만 내게는 첫 만남이었다.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바깥세상의 관심거리를 읽어보자 싶었는데

그러고도 눈에 들어 고른 책은 생명과 윤리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이었다.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세상에서는 과정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승리를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곳은 승리자라는 타이틀보다 더 귀한 선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열풍이 불었을 때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날 것처럼 흥분했다.

병자는 기능을 잃은 몸의 한 부분을 바꿀 수 있고

부모는 아이를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으며

예뻐지고 싶거나 강해지고 싶거나 똑똑해지고 싶은 것까지도

한낱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고

기술은 눈부시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일들이 가능해진 세상이 되어버렸다.

미용을 위한 성형은 많은 사람의 희망사항 중에 하나가 되었고

약물의 힘에 기대 기능을 극대화하려는 스포츠 스타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치료방법으로서의 줄기세포 연구는 본궤도에 올라 있고

보다 뛰어난 2세를 얻기 위해 정자를 고르고 난자를 선택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

정복과 통제를 높은 가치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부모됨의 의미는 우리에게 겸손을 위한 학교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유전자를 골라 아이의 미래를 확실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부모들에게 촉구하는 것은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 「정복과 선물」중에서, 131쪽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새 생명이 우리의 몸을 빌어 태어났을 때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삶에 대한 겸손이다.

모든 생명은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선물이며

또한 모든 생명은 아무도 갖지 못한 그만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런데 부모에 의해 선택된 유전자적 조합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신의 분투노력이 아니라 유전자적 조합의 성과로 의도되고 기대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런 삶은 결정론적 삶과 다를 것이 없을 테고

생명의 존엄과 감사에 대한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잘나고 똑똑하고 강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독자적이고 독립적이며

완벽하기까지 한 삶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또 그렇게 사는 삶을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남은 논의 벼포기들을 보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식물이고 동물이고 생명 가진 모든 것의 삶의 총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거워진 몸에게는 무거워진 몸에 맞는 삶이 펼쳐질 것이고

가벼운 몸에게는 가벼운 몸에 어울리는 삶이 전개된다.

 

어떤 시대 어떤 세상이 되어도 만인의 꿈이 한 가지로 이뤄지는 때란 없다.

붓다가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 중에도 들어있는 일,

그것은 불능진중생계不能盡衆生界라 하여

모든 중생계를 한번에 다 제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유전자기술의 진보에 따른 기획되고 의도되고 기대되는 생명의 출현,

축복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대보다 덜한 복이 될 것이고

걱정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우려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2010년 10월 11일 (월) 09:50:16 들돌 philip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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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mpudt님의 댓글

vjmpudt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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