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원선배님의가족이야기....불교여성개발원 <우바이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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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09.11.25 조회3,381회 댓글4건본문
가족 이야기
나의 도반 나의 아내 아들의 죽음과 불심(佛心) 조항원`(一超) / 한국남북문화관광공동체 대표
이 글 덕분에 ‘도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 한다. 도반은 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 속세를 떠난 출가한 사람들의 이야기쯤으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도반은 나의 아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나의 아내가 나의 도반이 아니라, 내가 아내의 도반이다. 29세의 아들을 보내고 2006년 말 우연히 자료를 정리하다가 아내가 아들 진기에게 보낸 ‘2004년 5월에의 푸르름을 맞이하여, 엄마가’라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오늘 하루 바빴지? / 걷고 서기 위해 애쓰는 진기를 보니 /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중략… / 가족의 사랑을 함께 나누면서 이 고비를 넘겨 행복을 가꾸어 나가자. …중략… / 엄마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버팀목임을 잊지 말고 / 이 시간들을 헤쳐 나가자, 우리들의 앞날을 위하여!
당시 그 글을 읽고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뭉클하고 찡했다. 지금도 그 글을 보면 아직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1년 7개월간 뇌종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달리한 아들에게, 수술 직후에 쓴 글이다. 당시 29세의 아들을 보내고 아버지인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가슴이 저리고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상태였다. 허니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불교활동을 같이했던 도반이 정성들여 가꾼 횡성의 한 사찰에서 수목장으로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가 하는 불교활동이나 불교행사에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냥 참여하는 정도였다(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모두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고, 친구나 주변의 동료 선배들이 거의 기독교 신자여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기독교에 더 익숙한 상태였다.
하나밖에 없는 늠름한 아들을 보내고 나서는, 자다가 무슨 소리에 깨서 옆을 보면 아내는 엎드려 흐느끼고 있거나 분노에 울부짖기도 하였다.
퇴근을 하다가 문득 바라본 하늘에 아들의 웃는 모습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운전대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들에 대해 가족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 너무 불쌍해서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각자 아픔을 가슴에 묻어 두고 그렇게 몸부림쳤다.
백척간두에서 만난 부처님
마침 그때 불교계 한 신문사에서 인도성지순례단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인도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아내도 선뜻 나섰다.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11박 12일간 인도 성지를 다녀온 뒤로 아내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유지했고, 인도에서 만난 부처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부처님을 세 번 뵈었다(?)고 했다. 한 번은 버스에서 꿈결에 언뜻 물이 가득 담긴 큰 항아리를 안겨주어 조심스럽게 받았으며, 두 번째는 한아름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았고, 세 번째는 누군가 바람처럼 곁을 스쳐가는 것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바람은 아들이었을 것이라고, 아들 진기가 엄마와 함께 인도를 여행했고 극락왕생했을 거라고 아내는 굳게 믿었다. 그 뒤 아내는 동산불교대학 2년 과정도 수강했다. 직장일로 바쁜 틈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토요일마다 열심히 다녔다. 하기수련대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불교 신앙활동을 해온 내가 봐도, 열심히 참여하는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졸업 때는 우수상과 아미타불상을 수상하고 대학원 진학할 경우 장학금까지 약속받았다. 최근에는 불광동 진관사에 적을 두고 매주 법회에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불자가 되었다.
다양한 활동으로 사회에 회향 아내는 그동안 사회복지 및 양성평등 분야 전문가로서 여성계에서 40여 년 가까이 활동해왔다. 지금은 서울시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여성들의 능력 개발을 통한 인력 양성과 활용을 위해 사회 교육 및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 여성에게 희망을 주고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불교여성개발원 등 불교단체들과도 인연을 맺어 참가하고 있다. 아내 자랑은 팔불출 가운데 하나라지만, 내 아내는 다양한 사회활동으로써 보시하는, 이 땅에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는 어엿한 불자인 것이다.
부처님의 도리는 깨달음〔佛〕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法〕과 실천〔僧〕에도 함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깨침과 앎과 삶이 별개가 아니고 하나인 도리를 확연히 깨닫고 늘 간직하기를 깊이 염원해본다. 이제 나는 아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의 도반이 되도록 몸과 맘을 다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에 새긴다.
진정한 도반은 함께이기보다는 각자 자신을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도자의 행각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 아내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했으며, 내게는 진정한 도반의 의미를 깨닫도록 새로운 구도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아마도 그는 나의 도반이며, 우리의 도반인지도 모른다.
� 조항원 님의 부인 강정숙 님은 현재 서울시서부여성발전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항원 님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8대 회장과 삼보법회합창단 단장 겸 지휘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남북문화관광공동체 대표, (주)내외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나의 도반 나의 아내 아들의 죽음과 불심(佛心) 조항원`(一超) / 한국남북문화관광공동체 대표
이 글 덕분에 ‘도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 한다. 도반은 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 속세를 떠난 출가한 사람들의 이야기쯤으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도반은 나의 아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나의 아내가 나의 도반이 아니라, 내가 아내의 도반이다. 29세의 아들을 보내고 2006년 말 우연히 자료를 정리하다가 아내가 아들 진기에게 보낸 ‘2004년 5월에의 푸르름을 맞이하여, 엄마가’라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오늘 하루 바빴지? / 걷고 서기 위해 애쓰는 진기를 보니 /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중략… / 가족의 사랑을 함께 나누면서 이 고비를 넘겨 행복을 가꾸어 나가자. …중략… / 엄마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버팀목임을 잊지 말고 / 이 시간들을 헤쳐 나가자, 우리들의 앞날을 위하여!
당시 그 글을 읽고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뭉클하고 찡했다. 지금도 그 글을 보면 아직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1년 7개월간 뇌종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달리한 아들에게, 수술 직후에 쓴 글이다. 당시 29세의 아들을 보내고 아버지인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가슴이 저리고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상태였다. 허니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불교활동을 같이했던 도반이 정성들여 가꾼 횡성의 한 사찰에서 수목장으로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가 하는 불교활동이나 불교행사에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냥 참여하는 정도였다(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모두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고, 친구나 주변의 동료 선배들이 거의 기독교 신자여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기독교에 더 익숙한 상태였다.
하나밖에 없는 늠름한 아들을 보내고 나서는, 자다가 무슨 소리에 깨서 옆을 보면 아내는 엎드려 흐느끼고 있거나 분노에 울부짖기도 하였다.
퇴근을 하다가 문득 바라본 하늘에 아들의 웃는 모습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운전대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들에 대해 가족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 너무 불쌍해서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각자 아픔을 가슴에 묻어 두고 그렇게 몸부림쳤다.
백척간두에서 만난 부처님
마침 그때 불교계 한 신문사에서 인도성지순례단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인도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아내도 선뜻 나섰다.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11박 12일간 인도 성지를 다녀온 뒤로 아내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유지했고, 인도에서 만난 부처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부처님을 세 번 뵈었다(?)고 했다. 한 번은 버스에서 꿈결에 언뜻 물이 가득 담긴 큰 항아리를 안겨주어 조심스럽게 받았으며, 두 번째는 한아름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았고, 세 번째는 누군가 바람처럼 곁을 스쳐가는 것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바람은 아들이었을 것이라고, 아들 진기가 엄마와 함께 인도를 여행했고 극락왕생했을 거라고 아내는 굳게 믿었다. 그 뒤 아내는 동산불교대학 2년 과정도 수강했다. 직장일로 바쁜 틈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토요일마다 열심히 다녔다. 하기수련대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불교 신앙활동을 해온 내가 봐도, 열심히 참여하는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졸업 때는 우수상과 아미타불상을 수상하고 대학원 진학할 경우 장학금까지 약속받았다. 최근에는 불광동 진관사에 적을 두고 매주 법회에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불자가 되었다.
다양한 활동으로 사회에 회향 아내는 그동안 사회복지 및 양성평등 분야 전문가로서 여성계에서 40여 년 가까이 활동해왔다. 지금은 서울시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여성들의 능력 개발을 통한 인력 양성과 활용을 위해 사회 교육 및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 여성에게 희망을 주고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불교여성개발원 등 불교단체들과도 인연을 맺어 참가하고 있다. 아내 자랑은 팔불출 가운데 하나라지만, 내 아내는 다양한 사회활동으로써 보시하는, 이 땅에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는 어엿한 불자인 것이다.
부처님의 도리는 깨달음〔佛〕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法〕과 실천〔僧〕에도 함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깨침과 앎과 삶이 별개가 아니고 하나인 도리를 확연히 깨닫고 늘 간직하기를 깊이 염원해본다. 이제 나는 아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의 도반이 되도록 몸과 맘을 다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에 새긴다.
진정한 도반은 함께이기보다는 각자 자신을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도자의 행각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 아내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했으며, 내게는 진정한 도반의 의미를 깨닫도록 새로운 구도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아마도 그는 나의 도반이며, 우리의 도반인지도 모른다.
� 조항원 님의 부인 강정숙 님은 현재 서울시서부여성발전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항원 님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8대 회장과 삼보법회합창단 단장 겸 지휘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남북문화관광공동체 대표, (주)내외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댓글목록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두분께 합장 올립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가정이나
한 두 가지의 아픈은 안고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모습
승화시키는 모습
회향하시는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슬프지만 아름답습니다.
조경옥님의 댓글
조경옥 작성일
나무석가모니불,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송충근님의 댓글
송충근 작성일송충근 두손모음
iayiflei님의 댓글
iayiflei 작성일AIZFe9 <a href="http://moxrduwizzel.com/">moxrduwizzel</a>, [url=http://oexzilhjnzck.com/]oexzilhjnzck[/url], [link=http://fterbiyrimwn.com/]fterbiyrimwn[/link], http://pogoucjxut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