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이순규선배님....퍼옴 ...부다피아..2008월 12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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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09.02.13 조회3,835회 댓글4건본문
광주불교교육원 원장 이순규 박사
“한국불교 미래 교육불사에 있어”
이순규 교수(서남대 의과대학병원·사진)는 광주전남지역 재가불교의 대부로 불린다.
서남대 의과대학병원 교수로 진료와 강의에 바쁜 이 교수를 늦은 시간 병원 근처에서 만났다.
“불교문화에 애정을 갖고 쉼 없이 달려왔는데 어느새 불교계 원로라고 불리더군요.”
이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광주불교교육원은 광주전남지역에서 불교교육과 문화 운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단체다. 이순규 교수는 초대 지선 스님(백양사 유나), 2대 영조 스님(송광사 주지)에 이어 3대 원장에 취임했다. 광주불교교육원은 현재 불교문화대학대학원, 성보해설사 과정 등을 운영 중이다.
“출가와 재가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국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말로만 외칠 뿐 하화중생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비판을 거침 없이 하는 이 교수는 “교육불사만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희를 앞둔 이순규 교수의 불연(佛緣)은 1959년 의과대학 재학시설 전남대에서 현공 윤주일 법사의 ‘불교학 개론’ 교양과목 강의를 들으며 시작됐다. 윤 법사의 강의를 듣던 이 교수는 부처님 가르침의 매력에 흠모돼 주저 없이 불교에 입문했다.
전남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1년 이순규 교수는 전남대 의과대학 불교학생회를 창립했다. 1962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가 창립될 때는 초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어 이 교수는 상인 스님(광주 관음사 주지)과 함께 ‘불교 보문회’를 결성했다. 불교 보문회를 시작으로 전국 최초의 불교유치원인 보문유치원이 설립됐다. 불교 보문회는 청소년, 청년회 등으로 포교의 발을 넓히며 대중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단체다.
광주에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1년에는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장을 맡아 대불련 전남지부장으로 봉축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동수 열사와 함께 봉축행사를 진행했다. 김동수 열사는 1981년 계엄군에 의해 도청에서 산화했다.
이순규 교수는 지금도 당시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젖는다.
“동수 부모님과 함께 5?18묘역에 가 동수의 주검을 확인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그 후 ‘김동수 열사 추모사업회’를 도맡았다. 조선대에는 추모사업회가 건립한 김동수 열사의 추모비가 있다.
이순규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 후 남도불교문화연구회를 결성, 불교문화운동에 매진했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로 시작된 이 교수의 불교문화에 대한 애정은 광주불교교육원에서 나타난다. 광주불교교육원이 진행한 문화유적 답사만 75회, 강좌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교수 사저에 있는 몇 십만 장에 달하는 문화재 슬라이드 필름이 그의 불교문화에 대한 애정을 증명한다.
이 교수의 마지막 바람은 불교교육 사업이다.
이순규 교수는 “세계는 현재 글로벌 시대에 맞는 종교를 찾고 있다. 그런 종교가 바로 불교”라며 “전쟁이 없는 평화, 자연과 융합하는 종교가 불교인 것에 불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한국불교 미래 교육불사에 있어”
이순규 교수(서남대 의과대학병원·사진)는 광주전남지역 재가불교의 대부로 불린다.
서남대 의과대학병원 교수로 진료와 강의에 바쁜 이 교수를 늦은 시간 병원 근처에서 만났다.
“불교문화에 애정을 갖고 쉼 없이 달려왔는데 어느새 불교계 원로라고 불리더군요.”
이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광주불교교육원은 광주전남지역에서 불교교육과 문화 운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단체다. 이순규 교수는 초대 지선 스님(백양사 유나), 2대 영조 스님(송광사 주지)에 이어 3대 원장에 취임했다. 광주불교교육원은 현재 불교문화대학대학원, 성보해설사 과정 등을 운영 중이다.
“출가와 재가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국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말로만 외칠 뿐 하화중생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비판을 거침 없이 하는 이 교수는 “교육불사만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희를 앞둔 이순규 교수의 불연(佛緣)은 1959년 의과대학 재학시설 전남대에서 현공 윤주일 법사의 ‘불교학 개론’ 교양과목 강의를 들으며 시작됐다. 윤 법사의 강의를 듣던 이 교수는 부처님 가르침의 매력에 흠모돼 주저 없이 불교에 입문했다.
전남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1년 이순규 교수는 전남대 의과대학 불교학생회를 창립했다. 1962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가 창립될 때는 초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어 이 교수는 상인 스님(광주 관음사 주지)과 함께 ‘불교 보문회’를 결성했다. 불교 보문회를 시작으로 전국 최초의 불교유치원인 보문유치원이 설립됐다. 불교 보문회는 청소년, 청년회 등으로 포교의 발을 넓히며 대중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단체다.
광주에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1년에는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장을 맡아 대불련 전남지부장으로 봉축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동수 열사와 함께 봉축행사를 진행했다. 김동수 열사는 1981년 계엄군에 의해 도청에서 산화했다.
이순규 교수는 지금도 당시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젖는다.
“동수 부모님과 함께 5?18묘역에 가 동수의 주검을 확인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그 후 ‘김동수 열사 추모사업회’를 도맡았다. 조선대에는 추모사업회가 건립한 김동수 열사의 추모비가 있다.
이순규 교수는 5?18 민주화운동 후 남도불교문화연구회를 결성, 불교문화운동에 매진했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로 시작된 이 교수의 불교문화에 대한 애정은 광주불교교육원에서 나타난다. 광주불교교육원이 진행한 문화유적 답사만 75회, 강좌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교수 사저에 있는 몇 십만 장에 달하는 문화재 슬라이드 필름이 그의 불교문화에 대한 애정을 증명한다.
이 교수의 마지막 바람은 불교교육 사업이다.
이순규 교수는 “세계는 현재 글로벌 시대에 맞는 종교를 찾고 있다. 그런 종교가 바로 불교”라며 “전쟁이 없는 평화, 자연과 융합하는 종교가 불교인 것에 불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댓글목록
홍경희님의 댓글
홍경희 작성일법인추진이 결정되자 제일먼저 법인 등기이사로서 완벽한 서류와 500만원 등기이사 동참금을 함께 보내셨을때..그 속에 깃들여있는 대원력과 준엄한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더욱 부끄러움에 가슴을 짓누릅니다..그 예전 금산사에서 들려주셨던 불교미술과 가람에 대한 해설이 그리워집니다...선배님과 햇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경청하던 전남지부 도반들..조보익..이현옥..최정훈...고거사..3월1일 화엄사에서 다시 보고싶습니다...그래서 그떄 그 환희심으로 행복하고 싶습니다...
손권찬님의 댓글
손권찬 작성일
김동수 열사의 49재때 참석하고 초라한 묘역을 보고 온 지가
어느듯3 0 년에 다 되어 가네요......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선배님! 얼굴도 모르는 후배지만 자랑스럽습니다.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송충근님의 댓글
송충근 작성일선배님 오랜만입니다, 84년 전남지부장송충근입니다. 많은 생각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든든한 선배님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늘건강히 계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