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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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 작성일2008.12.02 조회3,418회 댓글0건본문
12월 1일자로 발행된 계간 <불교평론> 겨울호를 주목한다.
▲ 계간 <불교평론> 겨울호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석가모니의 과학적인 근본 교리와는 거리가 먼 잡동사니의 비과학적인 불교로 변해 있다.” “진짜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불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앞의 인용문은 경북대 의학대학원 정신과 강병조 교수의 ‘한국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뒤의 것은 프랑스 출신의 신부로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한국불교를 가르치고 있는 서명원 교수의 일침이다.
두 편의 글이 올 겨울의 한국불교계를 뜨겁게 달굴 것인가. 아마 논쟁까지는 나아가지 않더라도 한국불교에 ‘석가모니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감’과, 개신교에 대한 열린 태도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강 교수는 왜 한국불교를 ‘잡동사니의 비과학적인 불교’라고 진단했을까.
▲ 강병조 경북대 정신과 교수
그는 ▷마음 또는 정신의 문제 ▷영혼의 문제 ▷윤회와 내세의 문제 ▷보살신앙의 문제 ▷신격화와 영험 ▷미신적 행위의 문제 ▷깨달음의 문제 등 일곱 가지를 짚어보고 “비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깨침과 근본 가르침 즉, 연기, 무아, 사성제, 삼법인, 팔정도, 공사상, 중도사상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 교수는 ▷마음 또는 정신의 문제에서 “산중에서 불철주야 ‘이 육체를 움직이는 주인은 누구인가’ 하고 참선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헛고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자칫 선에 대한 모독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마음이란 뇌의 기능’임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그러므로 “다만 참선하는 목적이 마음자리나 진아(眞我)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고, 석가모니께서 깨달으신 근본 이치인 연기, 무아, 사성제, 팔정도와 같은 불교의 근본 교리를 자기의 것으로 다시 깨닫고자 참선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이라며 참선의 방향을 제시했다.
▷윤회와 내세의 문제에 대해서는 “윤회 사상은 불교의 고유한 사상이 아니다.…힌두교는 윤회 사상을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고자 받아들였다. 만인 평등을 주장한 혁명가 석가모니는 힌두교식 윤회 사상을 거부하였다”고 강조하고, 윤회를 실체로서가 아니라 기능, 즉 심리적 윤회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보살 신앙과 관련해서는, “석가모니 열반 후 신도들의 마음을 달래는 하나의 방편으로 선각자가 ‘보살’이라는 소원 성취적 의지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면서 보살 신앙의 위상을 포이어바흐의 표현을 빌려 ‘소원 성취적 투사’로 위치 지었다.
▷신격화와 영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는 한국불교의 기독교화를 우려했다. “한국불교는 석가모니를 부처 내지 신(神)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의 행적 일부를 기적으로 만든 것이 많다. 이렇게 되면 한국불교는 기독교가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어 산신각과 칠성각에 대해 “과거에는 샤머니즘을 용인해야 할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라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라는 화두를 예로 들며 “여래장이나 불성처럼 불변하는 실체가 상주한다는 여래장 사상을 따라 존재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을 찾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불성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서명원 서강대 교수
푸른 눈의 신부 서명원 교수의 글 ‘종교간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서’는 <불교평론> 이번 호의 특집 ‘종교 갈등 해결의 길은 없는가’라는 주제에 배치되었다. 종교간 화해를 위해 불교인들에게 주는 제안을 담고 있다. 서 교수의 제안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배우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불교와 개신교의 관계가 헝클어진 실과 같이 된 분명한 이유는, 서로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한국의 불자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왔는데, 그간 진짜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불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자답했다.
서 교수는 불교인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에 무관심한 이유를 일곱 가지로 분석했다. 특히 “이웃종교를 방편으로만 생각할 뿐, 그것의 궁극적인 가치까지는 인정하지 못함으로써 개신교 못지않게 불교적인 입장에서 종교적 배타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불교의 배타성을 언급했다.
서 교수는 이어 불교가 기독교를 공부하는 인물을 배출하지 했다면서, 그 이유를 “자기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이웃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의 불교에 대한 여러 지적이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은 아닐까.
불교평론은 이번 호를 특집; 종교 갈등, 해결의 길은 없는가(종교 갈등, 그 불행의 세계사_곽병찬, 이웃종교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_이거룡, 종교 편향과 차별 방지를 위한 외국의 사례_남태욱 등), 기획; 불살생, 선택인가 당위인가(불교의 생명 개념과 불살생계_김성철, 불교는 왜 불살생을 권하는가_정덕 등), 논단(다시 응용불교학을 위한 변명_이혜숙 등), 세미나 중계(불교와 사회참여_박광서), 기획연재(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_오강남) 등으로 꾸몄다.
▲ 계간 <불교평론> 겨울호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석가모니의 과학적인 근본 교리와는 거리가 먼 잡동사니의 비과학적인 불교로 변해 있다.” “진짜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불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앞의 인용문은 경북대 의학대학원 정신과 강병조 교수의 ‘한국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뒤의 것은 프랑스 출신의 신부로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한국불교를 가르치고 있는 서명원 교수의 일침이다.
두 편의 글이 올 겨울의 한국불교계를 뜨겁게 달굴 것인가. 아마 논쟁까지는 나아가지 않더라도 한국불교에 ‘석가모니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감’과, 개신교에 대한 열린 태도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강 교수는 왜 한국불교를 ‘잡동사니의 비과학적인 불교’라고 진단했을까.
▲ 강병조 경북대 정신과 교수
그는 ▷마음 또는 정신의 문제 ▷영혼의 문제 ▷윤회와 내세의 문제 ▷보살신앙의 문제 ▷신격화와 영험 ▷미신적 행위의 문제 ▷깨달음의 문제 등 일곱 가지를 짚어보고 “비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깨침과 근본 가르침 즉, 연기, 무아, 사성제, 삼법인, 팔정도, 공사상, 중도사상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 교수는 ▷마음 또는 정신의 문제에서 “산중에서 불철주야 ‘이 육체를 움직이는 주인은 누구인가’ 하고 참선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헛고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자칫 선에 대한 모독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마음이란 뇌의 기능’임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그러므로 “다만 참선하는 목적이 마음자리나 진아(眞我)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고, 석가모니께서 깨달으신 근본 이치인 연기, 무아, 사성제, 팔정도와 같은 불교의 근본 교리를 자기의 것으로 다시 깨닫고자 참선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이라며 참선의 방향을 제시했다.
▷윤회와 내세의 문제에 대해서는 “윤회 사상은 불교의 고유한 사상이 아니다.…힌두교는 윤회 사상을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고자 받아들였다. 만인 평등을 주장한 혁명가 석가모니는 힌두교식 윤회 사상을 거부하였다”고 강조하고, 윤회를 실체로서가 아니라 기능, 즉 심리적 윤회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보살 신앙과 관련해서는, “석가모니 열반 후 신도들의 마음을 달래는 하나의 방편으로 선각자가 ‘보살’이라는 소원 성취적 의지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면서 보살 신앙의 위상을 포이어바흐의 표현을 빌려 ‘소원 성취적 투사’로 위치 지었다.
▷신격화와 영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는 한국불교의 기독교화를 우려했다. “한국불교는 석가모니를 부처 내지 신(神)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의 행적 일부를 기적으로 만든 것이 많다. 이렇게 되면 한국불교는 기독교가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어 산신각과 칠성각에 대해 “과거에는 샤머니즘을 용인해야 할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무엇을 깨달을 것이며,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라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라는 화두를 예로 들며 “여래장이나 불성처럼 불변하는 실체가 상주한다는 여래장 사상을 따라 존재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을 찾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불성설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서명원 서강대 교수
푸른 눈의 신부 서명원 교수의 글 ‘종교간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서’는 <불교평론> 이번 호의 특집 ‘종교 갈등 해결의 길은 없는가’라는 주제에 배치되었다. 종교간 화해를 위해 불교인들에게 주는 제안을 담고 있다. 서 교수의 제안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배우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불교와 개신교의 관계가 헝클어진 실과 같이 된 분명한 이유는, 서로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한국의 불자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왔는데, 그간 진짜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불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자답했다.
서 교수는 불교인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에 무관심한 이유를 일곱 가지로 분석했다. 특히 “이웃종교를 방편으로만 생각할 뿐, 그것의 궁극적인 가치까지는 인정하지 못함으로써 개신교 못지않게 불교적인 입장에서 종교적 배타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불교의 배타성을 언급했다.
서 교수는 이어 불교가 기독교를 공부하는 인물을 배출하지 했다면서, 그 이유를 “자기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이웃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의 불교에 대한 여러 지적이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은 아닐까.
불교평론은 이번 호를 특집; 종교 갈등, 해결의 길은 없는가(종교 갈등, 그 불행의 세계사_곽병찬, 이웃종교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_이거룡, 종교 편향과 차별 방지를 위한 외국의 사례_남태욱 등), 기획; 불살생, 선택인가 당위인가(불교의 생명 개념과 불살생계_김성철, 불교는 왜 불살생을 권하는가_정덕 등), 논단(다시 응용불교학을 위한 변명_이혜숙 등), 세미나 중계(불교와 사회참여_박광서), 기획연재(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_오강남) 등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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