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향기 06 - 이남덕 교수 (이화여대 대불련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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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호 작성일2011.11.27 조회4,251회 댓글1건본문
世世常行菩薩道 1999. 12월 8일 영주(瑩宙) 이남덕 합장
지금부터 7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식 자리에서였다.
한글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시는 분들 중에 좀 색다를 할머님 한 분이 계셨는데, 바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퇴직하신 후 계룡산 대자암에서 수행을 하시다 회색 법복 차림 그대로 식장에 나타나신 이남덕 박사였다.
부군은 앞날 서울대 역사학과에서 재직했던 김성칠 교수로 해방 직전 제천의 봉양금융조합 이사로 재직한 관계로 몇 해를 제천에 사신 인연도 있었다.
난 이러한 사실을 김성칠 교수의 일기집인 '역사 앞에서'를 감명 깊게 읽고서 알게 되었다.
물론 이미 이남덕 교수의 수필집인 '어느 산골 앉은뱅이의 기원'과 '팔순의 연꽃 한 송이' 등을 잔잔한 감흥으로 읽은 바 있었다.
또한 우리는 선우 결사회원이시기에 존경심은 더 했다.
이런 연유로 이남덕 보살님을 제천법회에 꼭 한번 모시고 싶었다.
이 소망이 무르익어 모시게 되었을 때 먼저 우리 집으로 오시어 다담(茶談)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보살님 이야기에 의하면, 부군이 제천에 계실 무렵 한반도 전국의 초등학교 교장께 서신을 보내 그 지방 자연마을의 유래와 현재 호수, 주민의 수, 역사 배출 인물 등등에 대하여 기록하여 보내 줄 것을 요청했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이 속속히 도착하기 시작하던 중에 해방이 되어 서울대학으로 가게 되고, 곧 삼팔선이 가로 막히고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중단이 되고 말았다고.
만약에 이 일이 제대로 성과를 보았다면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대한의 향토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애석해하셨다.
듣고 보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있으랴 싶었다.
수행과 글만큼이나 얼굴과 몸에서 법향(法香)이 스며나는 이남덕 보살님.
나의 잡문집에서 '야껴져야 할 사랑이란 언어'란 소재 글이 좋더라고 대자암에서 온 전화가 어제의 일 같은데 이젠 뇌질환에 의한 불성세고(不省世故)로 90세의 여생을 맞고 계신다니 마음이 아프다.
이남덕 박사님과 무위성 보살. 1999년 11월
댓글목록
이성균님의 댓글
이성균 작성일
이남덕보살님, 우리 대불련 이화여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님 대단하십니다.
그러하신 분을 제천법회에까지 모신 형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이남덕보살님, 얼마 남지 않으신 여생,, 평안하게 잘 사시다가 편히 가시길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