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살라에서 온 한국인 비구 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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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퍼옴 작성일2011.09.28 조회3,175회 댓글2건본문
줄여 먹으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맛이 있다
- 아주 특별한 인연, 다람살라에서 온 한국인 비구 청전
일 년 반 만에 다시 뵌 스님 모습이 여전해 보여 반가웠습니다.
눈빛 변함없이 순하시고 늘어진 살 없는 낯빛이 맑아 보여 좋았습니다.
웃는 모습에서 고운 빛깔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도 한결같으셨고요.
호리호리한 몸은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두 발에는 잘 닳아 코가 반짝거리는 깜장 고무신을 신고 계시더군요.
오래 전 제가 신었던 깜장 고무신은 마른 날보다 젖은 날이 더 많았고
신발보다 차가 되고 배가 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밝은 햇빛 속 도심에서 관풍 위에 앉아 스님 뒤를 따라가는 동안
제 시선은 줄곧 스님의 가느다란 몸과 굴신이 자유로운 깜장 고무신을 좆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특별한 인연 가진 분들 속에 끼어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의 모두에 들려주신 행각승 시절 양양에서 만난 노부부의 이야기 속에는
정성과 감사와 감동과 눈물의 요소가 두루 갖춰져 있어서
승과 속의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하시는 스님의 눈길도 중간중간 법문의 현장이 아닌
그 옛날 양양 산골 노부부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듯 보였습니다.
감옥에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가 옥졸의 권고에 따라 감옥 안을 걷다가
독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다리가 무거워지자 침대 위에 누웠고
그러자 옥졸이 들어와 소크라테스의 다리를 눌러보면서 물었다지요.
“감각이 있으십니까?”
“약 기운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그만이지.”
다리에 감각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태연하게 대답한 소크라테스는
이미 죽음의 경계 따위는 두려움 없이 넘어서 있었을 것인데
스님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의 올바른 순서를 보고 계셨습니다.
‘발부터 죽어야 성인’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죽음을 관자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다리가 죽고 심장이 멎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의식이 꺼져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몸은 멀쩡히 살아있고 의식은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태를 꾸짖으신 것이겠지요.
일 년 반 만에 다시 찾은 한국사회가 스님의 눈에는 어지간히 거칠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곳 어디서도 뒤에 들어오는 이를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이 없었고
열린 문 양쪽에서 만난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도 눈길을 마주쳐 미소 짓지 않는 사람들을 보았으니
좋은 뜻의 ‘나부터’는 보이지 않고 탐욕스러운 ‘나부터’로 만연한 세상이라 생각하셨겠지요.
편리를 좇다가 혼이 죽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식사는 엄마가 가족에게 차려주는 상이다. 땀 흘리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어찌 감동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지금도 손수 끼니를 지어 드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먹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식사가 곧 내 안에 있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맛 좋은 것보다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거칠게 먹지 말고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폭식과 성급한 식사야말로 거친 성정을 조장하는 원흉이고
배부름이야말로 나태한 수행의 조력자라고 하셨습니다.
빵 몇 조각, 밥 반 공기, 과일 한 접시 분량의 식사만으로도
Holy Breakfast, Delicious Lunch, Light Dinner라는 성찬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적게 먹으면 언제나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이 있다는 것을
스님은 흐트러짐 없는 수행을 통해 체현해내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더 천천히 가라고 말씀하셨고
더 적게 가지라고 말씀하셨고
이겨야 할 것은 오직 ‘나’라고 여기는 것 한 가지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들의 땅 인도의 힌두경전에서도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말하’라고 가르친다지요.
말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 것도 당부하셨습니다.
‘여럿이 있을 때는 입을 지키고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고
듣거나 들리는 말에 곧장 반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셨지요.
종교계, 좁혀 말해 불교계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토로하셨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학자, 수행에 등한한 출가자, 배운 대로 살아가지 않는 불자,
모든 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잊은 것의 부작용이라 하셨습니다.
불상은 부처가 아니라고 하셨고
부처님은 일생 요란한 법상을 차려본 적 없었다고 하셨고
진인眞人이 없으면 아무리 큰 절이라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특히 ‘스님은 민중의 복전福田이다’가 아니라
‘스님은 민중의 복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이 땅의 민중 위에 군림하려는 성직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 어려서 부모님에게 배운
‘착하게 살아라’와 ‘부지런히 살아라’보다 더 요긴한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부처님 법을 만난 뒤로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 보기에 부처님 법 또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그것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칠불통계七佛通戒를 읊으실 때
긴 말 필요 없이 불법 또한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諸惡莫作 제악막작
衆善奉行 중선봉행
自淨其意 자정기의
是諸佛敎 시제불교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좋은 일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깨달음의 성취도 큰 목표 중의 하나지만
비구의 신분으로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평생을 청정한 비구로 사는 것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목표라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를 챙기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느라 ‘배려’를 잊고 살았던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뿌리가 약이면 잎과 줄기도 약이 되지만
뿌리에 독이 있으면 잎과 줄기에도 독이 섞인다’는 힌두경전 속 가르침과
시간을 아껴 쓰고 책 많이 읽으라는 덕담을 잘 받들어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스님과 나란히 서서 사진 찍는 이들을 부럽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제게 건네주신 사진 있으니 언제라도 볼 수 있고
제 마음속에도 스님을 깊숙이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빽빽한 일정 속에 건강 상하시는 일 없이 귀한 말씀 전하시고
절대신뢰로 모신다는 달라이라마 존자님 곁으로 가신 뒤로도
오래오래 청안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9월, 볕 좋은 추분秋分 아침에
하루 전날 인사 드린 들돌 드립니다
p.s. 다음에 오실 때는 이번보다 더 반갑게 가까이 다가가서 뵙겠습니다.
들돌 philipol@hanmail.net
- 아주 특별한 인연, 다람살라에서 온 한국인 비구 청전
일 년 반 만에 다시 뵌 스님 모습이 여전해 보여 반가웠습니다.
눈빛 변함없이 순하시고 늘어진 살 없는 낯빛이 맑아 보여 좋았습니다.
웃는 모습에서 고운 빛깔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도 한결같으셨고요.
호리호리한 몸은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두 발에는 잘 닳아 코가 반짝거리는 깜장 고무신을 신고 계시더군요.
오래 전 제가 신었던 깜장 고무신은 마른 날보다 젖은 날이 더 많았고
신발보다 차가 되고 배가 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밝은 햇빛 속 도심에서 관풍 위에 앉아 스님 뒤를 따라가는 동안
제 시선은 줄곧 스님의 가느다란 몸과 굴신이 자유로운 깜장 고무신을 좆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특별한 인연 가진 분들 속에 끼어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의 모두에 들려주신 행각승 시절 양양에서 만난 노부부의 이야기 속에는
정성과 감사와 감동과 눈물의 요소가 두루 갖춰져 있어서
승과 속의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하시는 스님의 눈길도 중간중간 법문의 현장이 아닌
그 옛날 양양 산골 노부부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듯 보였습니다.
감옥에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가 옥졸의 권고에 따라 감옥 안을 걷다가
독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다리가 무거워지자 침대 위에 누웠고
그러자 옥졸이 들어와 소크라테스의 다리를 눌러보면서 물었다지요.
“감각이 있으십니까?”
“약 기운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그만이지.”
다리에 감각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태연하게 대답한 소크라테스는
이미 죽음의 경계 따위는 두려움 없이 넘어서 있었을 것인데
스님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의 올바른 순서를 보고 계셨습니다.
‘발부터 죽어야 성인’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죽음을 관자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다리가 죽고 심장이 멎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의식이 꺼져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몸은 멀쩡히 살아있고 의식은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태를 꾸짖으신 것이겠지요.
일 년 반 만에 다시 찾은 한국사회가 스님의 눈에는 어지간히 거칠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곳 어디서도 뒤에 들어오는 이를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이 없었고
열린 문 양쪽에서 만난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도 눈길을 마주쳐 미소 짓지 않는 사람들을 보았으니
좋은 뜻의 ‘나부터’는 보이지 않고 탐욕스러운 ‘나부터’로 만연한 세상이라 생각하셨겠지요.
편리를 좇다가 혼이 죽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식사는 엄마가 가족에게 차려주는 상이다. 땀 흘리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어찌 감동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지금도 손수 끼니를 지어 드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먹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식사가 곧 내 안에 있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맛 좋은 것보다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거칠게 먹지 말고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폭식과 성급한 식사야말로 거친 성정을 조장하는 원흉이고
배부름이야말로 나태한 수행의 조력자라고 하셨습니다.
빵 몇 조각, 밥 반 공기, 과일 한 접시 분량의 식사만으로도
Holy Breakfast, Delicious Lunch, Light Dinner라는 성찬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적게 먹으면 언제나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이 있다는 것을
스님은 흐트러짐 없는 수행을 통해 체현해내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더 천천히 가라고 말씀하셨고
더 적게 가지라고 말씀하셨고
이겨야 할 것은 오직 ‘나’라고 여기는 것 한 가지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들의 땅 인도의 힌두경전에서도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말하’라고 가르친다지요.
말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 것도 당부하셨습니다.
‘여럿이 있을 때는 입을 지키고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고
듣거나 들리는 말에 곧장 반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셨지요.
종교계, 좁혀 말해 불교계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토로하셨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학자, 수행에 등한한 출가자, 배운 대로 살아가지 않는 불자,
모든 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잊은 것의 부작용이라 하셨습니다.
불상은 부처가 아니라고 하셨고
부처님은 일생 요란한 법상을 차려본 적 없었다고 하셨고
진인眞人이 없으면 아무리 큰 절이라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특히 ‘스님은 민중의 복전福田이다’가 아니라
‘스님은 민중의 복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이 땅의 민중 위에 군림하려는 성직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 어려서 부모님에게 배운
‘착하게 살아라’와 ‘부지런히 살아라’보다 더 요긴한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부처님 법을 만난 뒤로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 보기에 부처님 법 또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그것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칠불통계七佛通戒를 읊으실 때
긴 말 필요 없이 불법 또한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諸惡莫作 제악막작
衆善奉行 중선봉행
自淨其意 자정기의
是諸佛敎 시제불교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좋은 일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깨달음의 성취도 큰 목표 중의 하나지만
비구의 신분으로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평생을 청정한 비구로 사는 것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목표라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를 챙기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느라 ‘배려’를 잊고 살았던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뿌리가 약이면 잎과 줄기도 약이 되지만
뿌리에 독이 있으면 잎과 줄기에도 독이 섞인다’는 힌두경전 속 가르침과
시간을 아껴 쓰고 책 많이 읽으라는 덕담을 잘 받들어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스님과 나란히 서서 사진 찍는 이들을 부럽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제게 건네주신 사진 있으니 언제라도 볼 수 있고
제 마음속에도 스님을 깊숙이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빽빽한 일정 속에 건강 상하시는 일 없이 귀한 말씀 전하시고
절대신뢰로 모신다는 달라이라마 존자님 곁으로 가신 뒤로도
오래오래 청안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9월, 볕 좋은 추분秋分 아침에
하루 전날 인사 드린 들돌 드립니다
p.s. 다음에 오실 때는 이번보다 더 반갑게 가까이 다가가서 뵙겠습니다.
들돌 philipol@hanmail.net
댓글목록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비 오는 아침에 너무나 귀한 말씀
덤으로 얻습니다. 좋은 말씀에
매일 매일 씻기우면
더 없이 청정 할 것 같은데......
언제나 그자리입니다.
합장 올립니다.
원유자님의 댓글
원유자 작성일홍경희도반!반가워요. 서운했던 마음도 클텐데 진정한 법의 전달자 그 큰마음 고맙습니다. 자주 들러서 좋은 법문 전해주셔요. 오해도 시간이 가면 불찰로 여겨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