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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향기 10 - 신동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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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호 작성일2012.01.08 조회3,24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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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산 자락이 남한강과 만나는 넓은 강변땅에 종일 햇볕이 들고 게다가 외부에서 접근이 용이치 않아 천연요새와도 같은 단양의 적성 수양개 언저리 - 그 자연의 혜택이 풍요로운 곳에 몇 만 년을 쉼 없이 인류가 살아온 선사와 역사가 이어지는 땅이 있다.
 그곳에는 유명 시인으로 절필을 하고서 낙향하여, 한때 포도농사와 젖소를 키우면서 침술을 터득하여 많은 분들의 고통을 덜어주시던 신동문 선생님이 사셨다.
 나와는 일찍이 어떻게 인연이 닿아 만나 뵙게 되었다.
 이후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지만 방명록에 한 말씀 받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몇 달 만에 등산복 차림으로 들르셨는데 난 무슨 예감에서인지 퍼뜩 방명록을 끄집어 내놓았다.
 선뜻 받아드시며 미소 띤 얼굴로 "김연호 선생 고맙습니다. 단양인 신동문"이라고 쓰셨다.
 이를 받아든 난 어쩐지 좀 허전했다.
 녹차를 한 잔 드시고는 곧장 서울로 가셨는데 며칠 뒤에 우연찮게 건강검진을 한 결과 담도암에 걸리신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근 일 년을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생이 다하실 무렵 나는 제천 서울병원으로 입원시켜 드리고 자주 병문안을 드렸다.
 
 시인으로, 언론인으로, 출판인으로, 세상을 풍미하면서 그 명성이 자자했던 충북 청원이 낳은 지조 시인 신동문 선생.
 병석에 계씰 때 나는 선생님만이 알고 있는 비화를 즐거이 듣곤 했다.
 그 중에 선생께서 경향신문 특집부장으로 있을 당시 3대 부정사건 폭로에 있어 가공할 만한 돈의 위력 앞에 변절한 정치계 거두인 김 아무개의 이야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들어가기 직전에 연희동 집 앞에서 읽은 성명서를 써준 소설가 이병주 선생께 아낌없이 원고료 10억을 주었다는 ('믿을 만한 소식에 의하면'이란 단서 아래) 사실.
 이외에도 민병산 선생, 김수영 시인, 송지영 선생 등등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난 신동문 선생님을 뵐 때마다 풍부한 식견과 지조를 지닌 큰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재삼 물은 절필의 이유는 끝까지 밝히지 않으시고 저 세상으로 갖고 가셨다.
 다만 병석에서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시다가 이렇게 좋은 우리말 문장을 보노라니 난 펜을 놓기를 참 잘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세상을 뜨시자 도내 3대 일간지(충청일보, 동양일보, 중부매일)에서 경쟁을 하듯 선생에 대한 특집을 한 면 가득씩 실었는데, 동양일보에선 나에게 추도사를 청탁해 왔었다.
 기사의 특성 상 긴박하다기에 1시간 만에, 내가 보았던 그간 선생님의 시대에 의연하신 삶과 마지막 투병을 하시면서도 끝까지 한결같으시던 모습을 써서 보냈다.
 다행히 제일 현장감 있는 추도사로서 제일 많은 애독과 칭송이 있었다는 유 편집국장의 전언이 있었다.
 
 
 
 
 
 

    - 신동문 선생님과 영돈, 영종.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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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성균님의 댓글

이성균 작성일

한 시대를 살다가 가신 분이셨군요,...
위에 방명록에 이왕이면 날짜(연월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윤월님의 댓글

윤월 작성일

삼가古人의 冥福을 머리숙여발원함니다      上品上生極樂往生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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