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마곡사(泰華山麻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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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완 작성일2011.04.19 조회3,355회 댓글3건본문
태화산마곡사(泰華山麻谷寺)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 체징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4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 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또한 마곡사에는 항일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수감됐던 인천 감옥에서 탈옥해 숨어들었던 곳이다. 선생은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승려 생활을 했다.
해방 후 2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선생은 고향인 황해도 해주 땅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했다. 사형수로, 장기수로 두 차례 수감되었던 인천에 이어 찾아온 곳이 바로 마곡사였다. 그만큼 마곡사는 선생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이 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향나무와 무궁화를 심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이역 타향을 떠돌던 그는 해방 후 일제가 물러간 뒤 고국에 돌아와 충남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광복 직후 마곡사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선생은 백범일지에 48년 전에 중이 되어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출입하던 길로 좌우를 살펴보며 천천히 들어가니, 의구한 산천은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고 썼다.
하룻밤을 마곡사에서 묵은 선생은 이튿날 아침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기념으로 무궁화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마곡사를 떠났다(백범일지 하권에서). 1946년의 일이다.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워 온 그가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한 그것은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평화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가 심은 한 그루의 무궁화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수명을 다하고 스러진 게다. 그러나 향나무 한 그루는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의 양지바른 자리에서 도담도담 자라고 있다. 향나무를 처음 심은 1946년에는 이미 서너 해를 넘긴 묘목이었을 테니 이 향나무의 나이는 올해로 65세를 조금 넘긴 셈이다. 그는 1949년 6월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 체징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4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 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또한 마곡사에는 항일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수감됐던 인천 감옥에서 탈옥해 숨어들었던 곳이다. 선생은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승려 생활을 했다.
해방 후 2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선생은 고향인 황해도 해주 땅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38선 이남 지방 순회를 시작했다. 사형수로, 장기수로 두 차례 수감되었던 인천에 이어 찾아온 곳이 바로 마곡사였다. 그만큼 마곡사는 선생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이 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향나무와 무궁화를 심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이역 타향을 떠돌던 그는 해방 후 일제가 물러간 뒤 고국에 돌아와 충남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광복 직후 마곡사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선생은 백범일지에 48년 전에 중이 되어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출입하던 길로 좌우를 살펴보며 천천히 들어가니, 의구한 산천은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고 썼다.
하룻밤을 마곡사에서 묵은 선생은 이튿날 아침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기념으로 무궁화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고 마곡사를 떠났다(백범일지 하권에서). 1946년의 일이다.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워 온 그가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한 그것은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평화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가 심은 한 그루의 무궁화는 지금 찾아볼 수 없다. 수명을 다하고 스러진 게다. 그러나 향나무 한 그루는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의 양지바른 자리에서 도담도담 자라고 있다. 향나무를 처음 심은 1946년에는 이미 서너 해를 넘긴 묘목이었을 테니 이 향나무의 나이는 올해로 65세를 조금 넘긴 셈이다. 그는 1949년 6월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댓글목록
윤월(상임고문)님의 댓글
윤월(상임고문) 작성일
마곡사는 1964년마곡사에서 출가입산한곳으로 미리가서대기함니다 내가 몆일간 앞어 병원에입원하 여 마곡사에가서 주지스님만나서이야기하지 못하고 오를(20일)서신으로 설법하여달라고 하엿고 또한 경내지안으로 들어가 주차하개금 지시하라고 편지보냇오 아마 100%그렇개 될것시요 건강이 좋으면 25_28츰마곡사가보갯다고 도 열락하여소 5월1일만낲시다 모든동문 가정에 부처님의 가호가 항상있기를 나무 불법승
원유자님의 댓글
원유자 작성일윤월스님 부처님을 향한 언행일치의 가르침 늘 새겨 듣습니다. 쾌차하셔서 후학을 바르게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윤월(상임고문)님의 댓글
윤월(상임고문) 작성일
원 유 자 교정선생님에개 먀리숙여 감사의말을함니다 내나이 78새(1933년생) 이다보니 수시로 앞을대가 종종있음니다 세월가는거 누가막겠음니가 頓首百倍위로하여주신되대하여 감사의인사를 함니다 원 유 자 교장선생님도 청장년이 지나셔으니 건강에유의하시기바람니다 감사함니다 많은재물보다 건강이우선임니다 (WELL_BEING and WELL_DIEING) 원 유 자님의가정에 웃음꽂이 항상하기르 기원하겟은니다 대불련총동문가정에도
마장가지로 행복이 웃음꽂이만발하기를 나무 불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