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고성대회에서<된장 청국알 판매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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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손주 작성일2011.08.22 조회3,491회 댓글3건본문
선배님들의 지지와 후원, 정신적인 격려, 80,90년대 이후 젊은 동문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움직임,지부장님의 탁월한 리더쉽,집행부의 헌신 무척행복했습니다. 대불련인임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경남지부 멋졌습니다. 저도 멋지게 우아하고 싶었지만 <진성농산>에서 된장 파는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내 모습은 망가졌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적은 돈이 모여 장학금도 주고 군포교도 하고 대불련 회관을 짓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원력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판매량***
- 자동차 보험 1건
- 청국알: 64통
- 된장1kg: 25통 3kg4통(12kg) 계:37kg
- 간장 1통
*** 판매금액 및 대불 수익금 ***
- 청국알: 18,000원(5,000원)*64 = 32,0000원
- 된장: 8,000원(3,000원)*37 = 101,000원
- 간장: 15,000원(5,000원)*1 = 5,000원
계: 426,000 원 (대불 국민은행 통장 입금 완료)
된장 수익금 누계: 495,000원+426,000원 = 921,000원
*** 이후 9월 24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교육경영자(교장,교감,교육장,장학관)불자연합회 전국대회가 있습니다. 1건이라도 단체급식이 이루어진다면 달려갑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영업사원처럼 행사때 마다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판매를 한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네게 돌아오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시작했을까?>발목을 잡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 때 좋아하는 선배님의 한 말씀이 힘을 보탰습니다.<손주야 세상에 복짓을 일이 그리 많지 않다.힘들지만 넌 지금 큰 복 짓고 있는거야>
- 첫째: 방부재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우리 먹거리를 저렴한 가 격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학교급식은 전통재래된장이 너무 비싸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된장을 먹일 수가 없는데 그 일을 하고 있다.
- 그 수익금의 전액을 기부하는데 그 사용의 가치는 앞으로 나타나겠지?
- 너의 원력과 기도가 될 수 있잖아. 참으로 적은 돈이지만 그 규모가 어디까지 일지? 한번 도전해봐
녜 선배님 하겠습니다. 이 한해가 가지전에 단체급식 10곳만 납품하면 <대불법당>운영비는 나오겠지요. 그 원력부터 시작할렵니다. 맛과 가격과 품질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10곳이 20곳이 되고 50곳이 되는건 시간문제 입니다.입소문은 참 빠르거던요. <특허제품(청국알),농수산식품부지정업체(조청),부방부제(된장)>이라 자신있습니다.
부산에서 온 최병천 후배 말
<강선배! 된장 정말 좋던데.... 등에 두드러기가 나서 옛날 할머니께서 된장 바르던게 생각나 발랐더니 다음 날 금방 좋아지던데...>
<방부제가 안 들어간 전통 재래 된장이라 그래>
*** 단체급식은 진성농산에서 직거래하고 수익금이 정산되어 <대불>통장으로 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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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균(부경대75)님의 댓글
이성균(부경대75) 작성일내가 동문대회 마치고 돌아와서 내 맘속에 걸리는것이 딱 하나가 있는데, 첫날 가서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니 우리 부산동문회원들 타고간 관광버스 2대 기사님들 숙식을 챙기고 신경쓰지 못했던것이 큰 미스로 생각되더니 부산에 돌아와서는,- 총동문대회 행사장에서는 내자신이 어떻게 돌아가고 시간 보냈는지 모르게 지내다가-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으로 나섰던 강손주후배님 된장등을 챙기지 못하고 우리 여성동문들한테 지시하고, 챙기도록 말하지 못하고 - 부산 돌아와서보니 되게 마음에 걸리는것이, 새심한 신경하나 쓰지 못하고 놓친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구려,,,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언제나 힘이 되어 주신 선배님!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보이거던요.
제가 언제나 행복한 이유는
감히 가까이 하기 힘든 삶을 수행처럼 살아 가시는 선배님들이
언제나 가까이 계시고
제가 힘들 때 손을 내밀면 꼭 잡아주실거란 믿음 때문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 대불동에서 느끼는 이러한 따뜻한 사랑은 흔치 않거던요. 선배님! 힘들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윤제철님의 댓글
윤제철 작성일
강손주 동문 모습은 조금도 망가지지 않고 그대로 우아했습니다. 묘선 공주는 왕궁을 벗어나 갖은 고초를 다 겪었지만 그 공덕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수행하여 마침내 관세음보살님이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