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결사-연평도순례--100인 100일순례--100년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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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경희..퍼옴 작성일2011.01.24 조회3,131회 댓글5건본문
'늙은전사의 편지'를 스팸으로 받지만 스팸은 모두 보지 않고 지워버린다.도대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는지 짜증도 났지만 '늙은'이라는 단어 때문에 차마 수신차단하진 못했다.
오늘의 편지에는 <연평도> <생명평화> 라는 단어가 눈에 번쩍 띄어 내용을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 홈피에 생명에 대한 이야기와 연평도 모금을 마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사람하는 등불님! 로 시작하는 편지는
빈자의 등을 생각케 하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생명평화결사-연평도순례--100인 100일순례--100년순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기위한 광고모금을 위한 알림글이었다.
내용은 복사가 되지 않아 옮기지 못한다.
내용을 검색해보니 ......경향신문에
<생명평화결사-연평도순례--100인 100일순례--100년순례>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하고 평화가 위협받는 이 땅에 생명존중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평화 정착을 염원하는 이들이 ‘생명평화 순례’에 나선다.
일상 생활 속에서 생명평화를 가꾸고 실천하려는 이들의 모임인 ‘생명평화결사’는 22일 연평도를 시작으로 ‘2011년 생명평화 순례’를 시작한다. 생명평화결사는 2003년 도법 스님 등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단체로 그동안 생명평화 탁발순례, 생명평화학교 운영 등 다양한 생명평화 활동을 벌여왔다.
올해 첫 순례인 연평도 순례는 22일 오전 10시 인천광역시 동인천의 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빔에 모여 순례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첫발을 내디딘다.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순례단은 선포식 후 인천 연안부두로 도보순례를 한다. 1박2일로 예정된 연평도 순례는 배편과 숙박 사정 등에 따라 10여명만이 참여할 예정이다.
생명평화결사 황대권 운영위원장(<야생초 편지>저자)은 20일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에서 보듯 이 땅에 전쟁 위기가 상존하고, 생명경시 풍조 또한 너무나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생명평화결사가 생명과 평화를 원하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나서 우리 사회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생명존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고 순례 취지를 밝혔다. 황 위원장은 “첫 순례지로 연평도를 택한 것은 연평도가 현재 한반도 평화위기의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생명평화결사는 연평도 순례에 이어 2월부터 ‘한반도 생명평화공동체를 위한 100인 100일 순례’라는 이름 아래 본격적으로 전국 순례를 펼친다. 100인 100일 순례는 전국 100개 지역에서 하루씩 생명평화 순례를 진행해 100일간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황 위원장은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전국 곳곳의 시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순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평화결사는 100인 100일 순례에 이어 6월쯤부터 ‘생명평화 100년 순례’에 들어갈 계획이다.
생명평화결사 평생교사단의 일원인 도법 스님은 “우리가 생명평화의 정착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생명평화의 염원을 심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정착을 원하는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아! 이즈음이면 이 편지가 어떤 인연으로 내게 들어오는지 알 듯도 했다.
늙은 전사의 편지 ...권술용 ....
검색하니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가슴을 울린다.
늙은 전사 권술용.....
국토순례요? 거창한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소통과 같은 것이죠 … 20년간 100일 걷기를 준비한 것처럼 지난 세월 만나온 사람들, 단식하면서 만난 인연들이 오랜 친구나 때론 친정아버지처럼 맞아줬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어요
2년여의 긴 시간 전국 각지를 두발로 걸으며 자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다. ‘늙은 전사’로 불리는 권술용(71·생명누리공동체 대표) 씨. 지난 18일 저녁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대전노숙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덥수룩한 수염에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도전적인 눈빛이 살아있었다.
보통 순례(巡禮)의 의미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지나 영장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로 일흔이 넘은 권 씨는 두발로 걷고, 또 걷다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이 생기고, 비록 많은 나이지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순례의 의미처럼 그에게 있어 성지는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성지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야 말로 세상을 만드는 구성원이고, 전국 각지에서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깨달은 것을 나누면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권 씨는 "어떤 갈림길에 섰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지만 이쪽 길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지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계산하지 않고 내딛다보면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인생이 바로 여행이고 순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씨알과 같은 삶
권술용 씨의 칠십평생 인생 역시 결코 남다르지 않다. 권 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일본 북해도로 징용에 끌려갔고, 해방이 된 후 살아서 돌아왔다.
이후 어려운 형편에 동해안을 떠돌며 살았고 그때의 가난과 떠돌이 경험이 인생의 원동력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 운명같이 함석헌 선생을 만난다. 함 선생과 함께 천안 씨알공동체에서 1년여 농사를 지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
천안 씨알농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 평창 산골로 들어가 화전민이 버리고 간 밭을 개간하며 지내다 부모님의 권유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가족이 있는 고성 대진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기도 했다. 당시 거름으로 쓰기 위해 대진항의 똥이란 똥은 전부 지게로 실어 날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그는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개척농장을 만들기 위해 화전민이 버린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그런 꿈같은 시간도 잠시, 밭에 불을 놓은 것이 산으로 번져 큰 불이 나고 만 것이다. 그 일로 구속된 권 씨는 2달간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교도소 생활이 큰 의미가 있었다. 그 일 때문에 한걸음에 달려온 함석헌 선생님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그 힘으로 지금껏 살아온 것 같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 뒤로 군에 입대한 권 씨는 제대 후 다시 강원도 최북단 마을을 찾아 흙집 짓고 야학하며 6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고난과 역경 속의 깨달음
서울로 올라와 사업을 시작한 권 씨는 시간이 지나고 연이은 사업실패를 겪으면서 고난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친구의 도움으로 시작한 모피가공 공장은 잘 나가는가 싶더니 결국 망했다. 어렵게 시작한 두 번째 사업 역시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노숙자 생활까지 해야 했던 권 씨는 호떡장사를 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평화의 마을 대전애육원 총무를 맡게 됐다. 그때가 바로 '사회복지' 일에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평화의 마을 총무라고 해서 왔더니 건물도 엉망이고 각종 소송에 말려 빚더미였다. 그 당시 결혼을 한 상태여서 빚을 내서 건물을 새로 지었지만 막상 우리 가족이 살 곳이 없어 뿔뿔이 흩어져 지내기도 했다"고 지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내딛은 걸음이 22년간 '사회복지사 권술용'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때부터 그의 활동은 눈부실 만큼 빛난다. 평화의 마을, 대동사회복지관, 노숙자센터, 지역자활센터, 지역통화운동 한밭레츠 등 그가 만들고 일궈낸 성과는 이로 말할 수 없다.
대전지역 곳곳에서 그가 뿌린 땀이 어느새 결실을 맺어 사회복지사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남을 위한 삶이나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이 일을 하다 보니 욕구가 생겼고 필요하니까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 때 생긴 권 씨만의 습관과 행동이 있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라. 앞뒤 재고 계산하지 않는다. 필요한 일이면 바로 시작하고 그 일을 이뤄가는 것'이 그만의 방식이고 삶의 방법이다.
◆새로운 도전… 그리고 시작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22년 삶을 살아온 권 씨는 지난 2008년 12월 잔여임기를 남겨둔 채 아름다운 퇴임을 했다. 그는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고,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긴 쉼의 길을 떠나고 싶다"고 퇴임의 변을 밝혔다. 퇴임 후 권 씨는 바로 인도행을 결심했다. 인도행에 앞서 지난 8년간 세계생태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인도, 동유럽, 네팔, 히말라야, 캐나다, 쿠바, 몽골, 러시아 바이칼, 중국을 다녀왔던 그였다.
인도에서 돌아온 권 씨는 간소한 채비를 마치고, 100일 국토순례를 결심하게 된다. 100일을 걸으면서 100가정을 찾아 만난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임진각에서 시작한 순례길은 길을 따라 서울까지, 또다시 제주에서 부산, 경남, 광주, 전북일부 지역 등 100일 동안 걸어서 첫 순례를 마쳤다.
그는 100일 순례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100일을 걷고 나니 10년을 산 것 같은 무게가 느껴진다. 다시 100일 걷고 또 걸으면 30년을 산 것이나 100세를 산 인생의 깊이와 연륜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1년여의 국토순례를 마친 권 씨는 아이들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생각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야하고 자유 없이 무한경쟁을 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어 만들어낸 것이 '국제 인디고 청소년 여행학교'다.
이렇게 시작한 여행학교가 지난 1월 40일간 인도여행을 시작으로 오는 7월 2기를 앞두고 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교실에 가둬놓고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압박과 스트레스를 여행을 통해 풀고 여행으로 쌓은 경험을 인생의 지침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생각이 적중했을까? 여행을 통해 변화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가 인도를 다녀오고 나서 180도 변했다. 이 아이는 한국에 돌아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어려운 사람을 위한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도전
70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 늙은 전사 권술용 씨는 아직도 새로운 것에 목이 말라 있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여러 사람에게 짐만 되고 대접도 못 받는 노인정을 다니며 수동적인 삶을 살기보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겠다"는 뜻에서 자신이 지은 '늙은 전사'라는 별명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그의 열정은 아직도 뜨겁다.
그는 "먼 훗날 우리 사회를 빛낸 한 인물에게 기자가 찾아와 존중받는 인생을 살게 한 계기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바로 국제 인디고 청소년 여행학교 출신이었다"라는 대답이 나오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사람과 문화를 개척하는 그의 발걸음은 지금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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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우리가 동참하여 순례를 시작하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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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월(상임고문)님의 댓글
윤월(상임고문) 작성일홍경 희후배에개 선배님죄송함니다 하였으니 더이상이럭궁 저러궁긴말하지않겠오 영평도모금할때밝히되로나는해병대출시이요어재27일해병대사령부인사참모부애확이전하를한빠 500만원빠든확인하였다고전화 받었오 그리고 구정직전애빧어 대민사업애아주적적하개사용하갰다하여소 그릭고모든 대불련총동문회원에개깊은감사이 인사를올린다고하여소 그러니누구든 의심과 기우에노라나지마시요 우리칩행부가하는일 또우영위애서하는일전적으로후원하시요 우리는갇은동업증새이요 다가치성불합시다 가정마다행복의 웃음꼿이만빨하기를기원드리깼오 나무석가모니불(3배)
홍경희님의 댓글
홍경희 작성일1월 열린법회 후 연평도 돕기 기금이 500만원으로 마감된 이야기가 거론 되었을때 의견을 내었는데 ...지금 그 일은 누가 책임을 지고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말만 무성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리로 가지 못하는 이유와 원인은 무엇인지....ㅠㅠㅠㅠㅠ
홍경희님의 댓글
홍경희 작성일예 선배님 죄송합니다...충고 감사히 받아지니겟습니다._()_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복지위원장 명경미선배가 이곳 저곳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날 회의 내용 참고해서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 보다 실천이 요구되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 없고 한 곳을 행해 가지만 방법은 다 다릅니다. 지난 2년 우리대불동이 모금 운동 많이 했습니다. 모두가 자발 적인 모금 운동이 었지만 무척 중요한 시도 였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있다 없다 말도 많았지만 우리는 했습니다. 단 한곳도 헛되이 쓴 곳은 없으며 사회 기부의 작은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적은 부분이지만 기부하신분들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도법 스님>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습니다. 우리 아이둘이 실상사 작은 학교 초기에 다녔으며 여름방학 땐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15일간 참여한 덕분에 지리산에 터도 잡았습니다.조카는 지금도 실상사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죠. 오빠와는 도반이구요. 인드라망 회원이기도 합니다.사상과 실천하시는 모습이 좋아 쫓아 다니고 싶지만 제게는 대불동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대불동 자동차 보험 회원 확보가 도 중요하고 CMS 회원 확보가 더 중요합니다. 한푼이라도 대불동 모금 운동에 참여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윤월(서승남)님의 댓글
윤월(서승남) 작성일
홍 경 희동문후배에개 세상복찹하게살지마시요 때가되면모든겄이 다빨겨질거신되 무었이급하다고뒤글을쓰시요 누구를 의심하는겄시요 아무리 女子라고하지만 度量을넓개사시요 却說하고
여러젊은동문이요 자기가낼회비는 고빡 고빡내고있는지 스쓰로생각하고 회비나 잘내시요 압으로이임대로 월200만원 경상비합하여 500만원 내지800만원충뿐하오 그리고 반드시insurance(car)외에도생가하면 불교와깊은이연있는사업거리가있오 에를들면 여행상품이라든지 생각하고 영구들이나 하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