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기원으로 채색된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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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연호 작성일2012.09.28 조회3,770회 댓글2건본문
기원으로 채색된 부탄 김연호
2012년 7월 2일, 이세상은 문명의 진보로 현란함이 가득한데 그 대열에서 살짝 비껴 앉은 듯 오히려 산소 같은 신선함이 느껴지는 은둔의 불교왕국 부탄을 찾았다.
6.7천 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준령으로 둘러싸인 고요와 평화의 땅 부탄은 그동안 우리의 입국을 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년 중 외국인의 입국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제반의 인프라 부족도 한 원인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굳이 외국인을 받아들여서까지 얻어지는 관광수입이 아니더라도 애당초 상대적인 모자람이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또한 자칫 무제한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에 의한 소비와 퇴폐문화가 끼치는 공해를 더 우려함도 있다고 했다.
전 국왕이었던 싱예 왕추크는 1974년 유엔 가입연설에서 행복지수란 말을 처음으로 언급 하였다고 한다. 처음 유포된 이 말에 세상은 미지의 부탄에 대한 신선한 이미지를 서서히 그리게 되었다. 1974년 부탄이 외국인에 문호를 개방하기 전에는 모든 생활필수품을 자급자족하면서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미소 속에서 모자람이란 단어는 의식하지 못하고서 살았다고 한다.
우리는 넘쳐나게 지니고 살면서도 자족은 내 것이 아닌 양 그냥 두고서 쉽게 유행을 따른다. 이에 비례한 만큼 교만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의 지수는 비록 제로 포인트에 머물러 있지만 여기에 상관없이 높은 행복지수가 있다는 작은 불교왕국 부탄은 우리 모두를 은근히 유혹하고 있었다.
공로보다 육로를 택하여 부탄으로 가는 길, 경유지인 인도델리의 공항은 7월인 데도 아직 몬순이 오지를 않아 푹푹 찌는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시 인도 북부 바그다로라 로 가는 국내선 항공기 내부도 에어컨은 돌고 있었지만 대지에서 받은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 했는지 후텁지근했다. 두 시간을 용케 참아내고서 바그다로라의 공항에 내려 준비된 택시에 올랐다. 수(樹)평선을 이룬 한없이 넓은 녹색의 차밭을 바라보며 달려가노라니 어느덧 평화로운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우리는 세계 제일의 홍차 생산지로 유명한 다질링과 앞날 왕국이었던 시킴을 경유하여 점점 해발고도가 높아만 가는 부탄을 향하여 달렸다. 산악의 도로는 열악하면서도 위험천만이었다. 도로는 불량한 포장상태의 중앙선도 난간대도 없는 산길로, 벵갈 출신의 20대 청년 기사는 앞차와 마주 오는 차를 일체 무시하고서 공상세계 속의 외계인처럼 겁도 없이 막 달리는 것이었다. 그 엄청난 계곡의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길 위를 요술을 부리듯 추월하며 내달리는 과속은 끝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찔아찔하여 자주 눈을 감았으나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에라, 하고선 운명에 맞길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가는 동안 어느 사이에 위험에도 면역이 따르는지 높은 산 깊은 계곡을 껴안고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풍경에 나의 눈길은 혹해 있었다. 산악의 다질링과 시킴은 앞날 영국인들이 하절기 피서를 즐기기 위하여 지은 집들로 산을 덮고 있었다. 비록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여 길을 내고 지은 집들이지만 산과 부합하여 이루어진 마을들이 어울려 보이고 아름답게 다가옴은 현대문명에 길들여진 탓은 아닐는지. 중간 중간의 숙소에 머물러 가며 사흘을 달려 인도 서부 벵갈과 부탄의 국경도시인 자가이온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소형버스로 부탄의 수도 팀부까지 가는 높은 산악의 국경을 종일 넘어야할 고난의 코스를 의식하며 체력 조절을 위하여 국경호텔에서 하루 밤의 여장을 풀었다.
부탄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외길은 고도 2천 미터의 산악이 열어 주었는데 아스팔트로 산뜻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이 국경의 길은 인도에서 길을 내고 관리도 해주면서 대신 부탄에서 수력으로 얻은 전기와 목재를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계속 오르기만 하다 드디어 산악의 중턱을 타고서 도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구곡양장의 그 길이었다. 돌고 돌아 산 하나가 끝난 성 싶으면 또다시 연속으로 이어지는 험로에서 그래도 덜 지치게 하는 것은 바로 태고의 경관이었다. 수많은 종의 수림으로 빽빽한 밀림과 건너다보이는 계곡들에서 쏟아져 내리며 날리는 거대한 폭포가 태고의 신비처럼 아련히 시야에 들어왔다. 폭포의 이미지로 문을 열어주는 부탄은 가히 폭포의 나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곳곳에 폭포가 많다고 한다. 한없이 푸르른 창공 아래 펼쳐진 산간의 어울림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어느 결에 찻길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는 순간 아찔한 천길 만길 낭떠러지가 간장을 서늘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길 주변의 산비탈과 벼랑에선 산도 살아있다는 듯 계속 진행 중인 바위와 자갈의 미끄럼이 또한 공포로 다가왔다. 그 길을 손보기 위해 파견된 인도의 군인들은 포크 레인으로, 생업 종사 벵갈의 민초들은 망치로 돌덩어리를 깨어 자갈을 만드는 작업을 중간 중간에서 하고 있었다.
그 산악의 언저리에도 다문다문 인적은 있었다. 집들은 대체로 두텁게 흙으로 쌓아올린 앞날 제천지방의 담배건조장과도 비슷한 형태의 3층 일자집으로 부탄의 전통가옥이다. 집주변에는 모두 어김없이 오방색의 천인 타르쵸와 룽다를 걸어 치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길가에는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이용하여 불경을 담은 원통형 마니수차가 물의 힘으로 끝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땡’ 하며 내는 소리는 산간의 고요를 더욱 가일층 하게 했다. 그 한계가 점쳐지지 않던 산길도 다되어 가는지 산간의 언저리에 밭들이 보이면서 자연부락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첩첩 겹겹이던 산간에서 흐르던 물들이 모여들어 하나가 된 큰 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부탄의 수도 팀부로 흘러가는 왕츄강이라고 했다. 그 넓은 강과 다리를 가로질러 하늘, 땅, 바람, 물, 불을 상징하는 오방색의 타르쵸들이 축제를 위한 설치미술인 양 길게 걸려 바람결에 부지런히 나부끼고 있었다. 어느 산의 언저리에는 긴 대나무 작대기에다 경문이 적힌 흰색의 룽다를 빼곡히 꽂아 밭을 이루며 곳곳에서 바람결에 세차게 나부끼는 대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강에는 강물을 따라 흘러간 부처님의 말씀이 바다로 가서 대해를 물들여 달라하고, 다리 위의 것은 이 위를 지나다니는 모든 생명을 인도하여 달라하고, 수차는 자비의 힘이 계속 돌고 돌아 세상곳곳으로 퍼져가서 극락정토가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이라고 한다. 또 흰 천의 룽다는 돌아가신 이의 영혼이 서방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해달라는 기원에서 지장경을 쓴 108개를 바람이 많은 산등성이에 총총히 새워두기도 했었다. 오방색 롱다는 집안의 환희로움을 감사한 만큼에 비례하여 무더기로 세워두기도 했다. 이 모두는 자연을 이용한 순수 무구한 마음이 우주공간에 가득하길 비는 기원이었다.
부탄은 이렇게 가는 곳마다 산길에서는 수차가 마을과 절에서는 마니차가 돌아가고 공중에는 타르쵸와 룽다가 펄럭이며 사람들의 손에는 마니콜라와 염주가 들려서 돌아가고 있었다.
곳곳에 불심으로 채색된 부탄의 온 거리와 민가주변에는 소도 개도 염소도 새도 한가롭게 모여들어 있었다. 원래 자기들이 다니던 길이였다고 해서인지 차와 사람이 가도 잘 피하여 주지를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함께 같이 모여 살고 있는 듯하여 그저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였다.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 그곳의 사람들이 평생에 한번쯤은 꼭 찾아가고자 하는 기원의 성소로 향했다. 부탄 서부의 파로에 있는 해발 3천 백 미터 높이에 자리한 탁상사원이 그곳이었다. 지금부터 1천 3백여 년 전, 파드마삼바바가 인도의 나란다 승원에서 만난 한 부탄 스님의 부탁으로 호랑이를 타고 와서 기도를 시작하여 그 상서로운 기운이 온 산정에 꽃이 피어나듯 사원을 이루어 지금의 탁상사원이다.
그곳은 말을 타고서 올라야 한다는 안내자의 조언에 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말을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탈길을 어떻게 중심을 잡고서 오르랴 싶어 그냥 걸어서 오르길 희망했다. 그러나 말을 타지 않고서는 고산증과 피곤을 이기지 못 할 것이라는 충고에 난 어쩔 수없이 할당된 조랑말 같은 작은 말의 등에 올랐다. 몸은 긴 사람이 어깨에는 작은 배낭까지 메고서 꼭 간짓대에 조리를 매달아놓은 꼴로 작은 말 등에 오른 나의 폼이 얼마나 희극이었을까 스스로도 짐작이 되었다. 겨우 중심을 잡고서 언덕길을 오르는 불안정한 상태가 동행자들에겐 옛날 나귀타고 천렵 가는 한량의 모습이나 진배가 없었던지 참 웃기는 폼이라는 표정들이었다. 웃음거리 정도야 뒷전인 채 나의 마음은 심각했었다. 말 등에서 몸의 중심이 조금만 덜 잡혀도 여차하면 계곡으로 들어부어져 버릴 것 같아 영 재미가 없는 불안초조 그 자체였다. 점점 가중되는 불안에 도저히 안 되겠다싶어 말꾼의 우두머리인 양반께 큰말을 바꾸어달라고 소리를 질러 요행히 어룩배기 대마의 등에 오를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안정되고 편할 수가 있으랴! 진즉에 바꾸어 달라고 못한 것이 영 후회 서럽기만 하였다. 그제서야 오르는 길이 신이 나고 부탄을 호령하는 장수나 된 듯 도도하게시리 폼이 잡혔다. 그러길 불과 몇 분 후 탁상사원이 아련히 시야에 들어왔다. 아 저렇게 길도 없어 보이는 암벽의 산들에 기도처가 꽃 봉우리처럼 매달려 있다니 싶어 잠시 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자고 몇 걸음 전진하자 이젠 말길은 다 왔다고 내리라는 것이었다. 겨우 몇 십 미터도 안 왔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말 덕이 없어 그저 좋다가 만 셈이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겨 놓자 폭포소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사원의 일주문 바로 앞에는 높이가 3백 미터나 되어 보이는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탁상사원은 앞이 확 트인 곳의 한 5백 미터 정도 높이의 암벽벼랑 위 위태롭기도 한 곳에 새집처럼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나의 시야의 한계로서는 도저히 손길이 미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암벽과 암벽 사이로 사방을 가로지른 색색의 타르쵸들이 바람결에 하염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꼭 중생들을 향하여 끝없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 기막힌 자연의 품에 환상의 예술처럼 지극한 불심의 기원이 이루어 놓은 탁상사원. 아! 참으로 훌륭한 부탄인들의 아름다운 회향의 기도처이다 싶었다.
나는 부탄사람들이 집집마다 부처님을 모시고서 항상 자비를 그리고 생각하며 생활하다 다시 회향의 기도처로서 이곳을 찾는다는 사실에 수희 찬탄 하고픈 마음이 절로 일었다. 나 역시도 그들의 순수 무구한 발원과 정성 기원이 담긴 성소라서인지 절로 맑은 기도의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 나오는 듯하였다. 티베트 불교의 원조이신 위대한 ‘구루 린포체 파드마삼바바’의 정신이 저미어나는 처처 5곳의 법당 부처님에게 절을 올리면서 사랑하는 모든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 하였다.
댓글목록
조득환님의 댓글
조득환 작성일
선배님!
좋은 성지순례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뭇 순례자의 모습을 되새기하는 묘사에 찬사와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이 공덕으로 더욱 법력이 승화되시어, 부처님 전에 밝은 날과 같이 복 많이 짓길 발원...나무미륵존여래불
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선배님!
다음에는 따라 나서야 겠습니다.
나 중에 천상에 가시면 혼돈 하시겠어요.
그 옛날 내 살던 곳인데.....
어찌 천상이 그대로 인고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