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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호석 작성일2012.01.10 조회2,938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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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훼손과 불교 자존을 스스로 짓밟은
악견 비구들과 동참한 학자들은 참회해야
[이제열 법사 특별기고] ‘아쇼카 선언’ 즉각 폐기해야 마땅
“남방불교권 같았으면 바라이죄에 해당되는 산문출송감”
이제열법사 yoomalee@hanmail.net
도법스님 등 종정스님 교시에 불복으로 논란 지속

지난해 교계에 큰 논쟁거리를 남겨 두었던 주제는 무엇보다 이른바 ‘21세기 아쇼카 선언’이라고 일컬어지는 ‘종교 평화 선언’이었다.
갈수록 악착해지기만 하는 기독교계의 불교계에 대한 공격에 불교계가 기독교계를 향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세속의 시각에서는 이 선언이 불교의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잘 보여 준 태도로 보고 긍정적 반향들을 보여 준 면도 있었으나 정작 교계 내에서는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문제는 종교간의 화합을 내세워 불교의 법성(法性)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문제는 교계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 스님의 교시를 통해 일단락되는 듯하였으나 선언을 주도한 도법스님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불복으로 아직 이렇다 하게 정리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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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연 이제열 법사의 설법모습. <미디어붓다 자료사진>

불교의 서슬같은 법성을 외도의 교설과 동일시하다니

나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처음부터 이 선언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선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느 쪽이 분쟁을 낳게 한 주체냐 하는 질문을 떠나 불교계가 먼저 종교 간의 평화를 역설 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 할만하다. 하지만 아쇼카를 앞세워서까지 작성한 선언문의 내용은 매우 심각했다.
적용에도 합당하지 않은 연기(緣起)니 화엄(화엄)이니 불이(不二)니하는 교리까지 끌어들여 종교 간의 화합과 평화를 강조한 것까지는 보아 줄만 하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그 선언문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소위 ‘열린 진리관’이라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불교의 서슬 같은 법성을 외도의 교설과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종교가 다른 것은 진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르다’라는 표현,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인연일 뿐’이라는 표현은 과연 이 땅에 불교라는 종교가 필요나 한 것인지, 또한 애써 출가까지 하면서 수행정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목숨을 버릴 만큼 전법을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등 불교적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나는 이 선언문에 대한 시비가 한창이었을 때에 한 토론회에 참석한바 있다. 그때에 나는 이 선언문 작성에 관여 했던 몇몇 학자와 실무 책임자에게 선언문의 폐기처분과 관계자들의 참회를 요구하면서 ‘불교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진리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불교와 기독교는 모든 면에서 크게 다르다

알다시피 기독교는 야훼라는 신을 중심으로 창조, 타락, 죄, 구원, 약속, 심판, 종말, 신국의 순서로 이어지는 교리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독교 교리를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대비해보면 하나도 부합 되는 부분이 없다.
우선 불교에서는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도 부정할 뿐더러 그 신에 의해서 우주만물의 생성과 길흉화복이 이루어진다는 주장도 배척한다. 부처님은 연기설(緣起說)로써 신에 의해 만물이 만들어지고 운행되어 진다는 창조설을 비판하셨고, 무아설(無我設)로써 신이 인간에게 부여 했다는 영혼설을 비판하였다. 또한 부처님은 업설(業設)로써 세상과 인간의 운명은 이미 신이 계획해 놓은 예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예정설을 부정하였고, 스스로가 지은 죄업은 스스로가 받고 스스로만이 깨끗이 할 수 있다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교설로써 예수의 십자가 사건 같은 대속(代贖)원리를 부정하였다. 불교의 윤회설(輪廻說)은 신의 심판에 따른 천국과 지옥의 영원성을 배척하였고, 무시무종 중중무진의 법계설(法界設)은 천국과 지상으로 한계 지어진 태초와 종말설을 부정하고 있다.
더구나 부처님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결코 신을 향한 기도나 예배, 찬양,헌신 등을 통해서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오로지 거룩한 팔정도와 삼학을 닦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설하였다.
우리는 경전에 왜 범천이라는 창조신이 부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는 바로 신의 종교가 아무리 위대해도 바른 가르침이 아니며 최상의 가르침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은 사랑을 권고하고 실천한 것

다만 기독교 교리 가운데에서 불교와 부합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면 인간과 인간관계에 있어 지극한 사랑을 권고하고 실천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랑마저도 신을 믿고 실천할 때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불교의 무주상의 자비행과는 본질이 다르다.
이렇게 본다면 기독교는 그야말로 불교 안에서 하나도 인정할게 없는 엉터리 교설이며 중생을 교란시키고 미혹을 조장시키는 사마외도의 가르침에 불과하다. 기독교 자체 교리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종교적 가치가 훌륭할지는 모르나 으뜸 되는 제일의(第一義)의 진리적 가치에 있어서는 결코 정법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기독교가 불교보다 선교의 열정과 힘이 강한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가 불교보다 위대해서가 아니라 기독교는 인간보다는 신을 우선적 가치로 삼고 이러한 신이 선교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기쁨이나 영광보다는 신의 기쁨과 영광을 우선으로 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을 위함이 아니라 신 자신을 위해서이고 그렇다보니 인간의 삶은 오직 신에게 영광 돌리는 행위와 그 명령을 실천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인간의 삶은 신의 영광에 목적을 두고 살아갈 때 축복이 오고 구원이 가능해진다. 기독교의 선교는 바로 이 같은 신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독교의 교리와 선교 공격에 정당하게 맞서 정법을 수호하려는 태도는 없고 열린 진리관 운운하며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느니 종교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인연일 뿐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종교 간의 평화를 부르짖었다는 것은 불교 역사상 최대의 망발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독교는 아쇼카 선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살펴보라 

나는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세력을 적으로 삼고 그들의 지나친 선교 행위에 대해 폭력이나 물리력으로 맞서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끝까지 관용과 자비로써 기독교의 공세를 막아 내고 부처님의 정법을 확산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이런 식의 사고로써는 기독교의 먹이 감만 될 뿐이다.
이 선언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일부 있었다 하자. 그렇다면 상대편인 기독교계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던가?
그들이 불교계의 평화 선언에 우리도 동감하고 불교에도 진리가 있다고 평가를 했는가? 아니면 그들이 세상을 향해 기독교 역시 이방종교를 개종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고 선언을 했는가? 불교가 기독교보다 통이 큰 종교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의 협소함을 돌아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오히려 그들은 앞으로 불교의 세력을 얕보고 화해를 내미는 손에 십자가를 쥐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서 고린도서나 사도행전을 관심 있게 읽어보라. 아마 제대로 된 불자라면 이런 따위의 선언문은 작성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새삼 새해 벽두부터 이 문제를 들고 나와 시시비비 하는 데에는 아직도 이렇게 정법을 훼손하고 불교의 자존을 스스로 짓밟는 악견비구들을 비롯한 이에 동참한 학자들이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남방불교권 같으면 바라이 죄목을 들어 산문 출송을 당하고 교단에서 퇴출당했어야 할 일이건만 비판은커녕 오히려 이들을 비호하고 박수를 치는 무리들이 있으니 참으로 한국 불교의 현실이 한심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용수의 '계율 깨뜨릴지언정 정견 무너뜨리지 말라'는 경고 새겨야 

일찍이 파사현정의 깃발을 높이 든 대승불교의 선구자 용수 보살은 중론에서 “차라리 계율을 깨뜨릴지언정 정견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는 수행자는 도덕적 가치보다 진리에 대한 가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시사되는 바가 크다.
불교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은 기독교가 진리여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는 기독교를 진리적 가치는 아니지만 종교적 가치로써 화합하고 공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치를 지켜준다 해서 결코 우리가 그들을 포교의 대상으로 두지 않을 수는 없다. 공존과 평화를 내세워 그들을 향해 정법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포기 하거나 게을리 한다면 불교는 이미 종교적 가치를 상실한 죽은 가르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아쇼카의 이름을 앞세워 불교와 기독교를 같은 진리의 선상위에 올려놓고 선포한 종교 평화선언의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하며 이 일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공개적인 참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열법사 yooma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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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윤월님의 댓글

윤월 작성일

이제열법사의 말이백번올은소리다 엣날갇으면 山門出僧하미  올다 이는良識잇는사람

이라면 그누그도부인할수엎는 嚴然한사실이다  스스로 불교를말살하려는 저급한 발상이다  조계종총무원은 즉시그누구라도
면빈식혀라

윤제철님의 댓글

윤제철 작성일

소위 "종교평화선언"이란 것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 글을 읽으면 마치 그 동안 불교측에서 다른 종교를 비방하고, 그래서 종교간 갈등을 일으키고, 뒤 늦게 불교계가 반성하는 것 처럼 보인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그 동안 봉은사 법당에서, 조계사 법당에서 난동을 부리고, 동국대학교 정각원 법당에 오물을 싸고, 불상에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리고 "오직 예수"라고 쓰고 한 것은 개신교 측이다. 누가 반성해야 할 일인가?

"종교평화선언"은 도법 등 6스님과  조성택 등 3 교수가 작성했다 한다. 만일 북한이 다시 6.25 같은 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에 쳐들어 온다면, 이 사람들 틀림 없이 "남북평화선언"이란 걸 발표할 것 같다. 거기에는 "북한이 쳐들어 왔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겠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공산군을 공격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종교평화선언에서  "이웃 종교는 나의 종교를 비추는 거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기독교에서 설정한 교리에 우리 불교신앙을 결부시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신앙체계가 다른 기독교라는 거울에 어떻게 불교를 비추어본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동국대학교 불상에 붉은 십자가를 긋고 "오직 예수"라고 쓴 것이 기독교 거울에 비춰진 불교의 모습이라는 말인가? 한심한 사람들이다.

박호석님의 댓글

박호석 작성일

이 글을 읽고 우리 동문회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또 어떻게 행동(사업)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였으면 합니다.

윤제철님의 댓글

윤제철 작성일

다른 종교 믿는 사람들이 이 사회 지도층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한, 그들은 불교 비방과 부처님 훼손과 법당 앞 땅밟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종교가 불교를 비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는 불교가 이 사회의 지도이념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가 이 사회의 지도이념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이 불심에 충만해햐 합니다.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해야 하며, 하루 빨리 젊은 불자를 육성하야 합니다. 대학생 불자와 불교동아리에 지원하는 장학금 규모를 크게 늘려야 하며, 군 포교사업도 본격화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대불련 동문회, 사단법인 대불이 해야 할 일입니다.

김연호님의 댓글

김연호 작성일

우리 대한불교의 현실은 사회를 향한 메시시가 없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빛과 같은 서광이 있다면 도법스님같이 시대의 아픔과 우리불교의 현실을 파악하고 계신분이 있어 천만다행이 아닐 수없습니다. 아쇼카선언 위대하고 위대하다고 소인은 확신합니다. 도법스님 깨인분이고 열린분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보살입니다. 작금의 우리불교현실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가진 선지식들을 우리는 존경해야진 누구를 존경한다말입니까. 해인사와 현주지스님 문제가 많다는 것은 아는사람은 다아는 현실입니다. 이 시대 종교는 관용과 포용이 없으면 종말입니다. 우리 이름뿐인 대승불교 이제라도 큰사회변화의 틀에 선도적으로 나아가고자하는 큰 길에 우리 대불련동문회의 중심 의식 저는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이런 글을 올린 의도 정말 반갑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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