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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선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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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호석 작성일2011.05.25 조회3,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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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선지식’ 청봉 선사, 5월 21일 입적 
 <미디어 붓다> 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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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참스승, 청봉 청운 선사를 추모하며"

선사께서 지난 21일 아침 6시에 입적하셨습니다. 3년 전, 6개월 시한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당신이 할 일이 남아있다고 입원치료를 거부하시고는 지난 부처님오신날 정릉 삼보정사 법상에서도 사자후를 하셨는데, 끝내는 육신의 옷을 벗으셨습니다. 너무도 헤진 옷을 걸치셨기에 벗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렇게도 지성으로 임하셨던 전법의 길을 마치셔야 했음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덕숭총림 초대 방장인 혜암 현문선사의 전법제자로서, 누구든 물으라는 무차선 법회를 열어 거량하시던 늠름한 기개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접하여 지도하시던 자애로움을, ‘장군죽비’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여 손수 자판을 두드리며 법거량을 하시던 정보화시대의 선지식을, 서울과 지방에서 매주 열리는 정기법회를 단 한 차례도 빠진 일이 없으셨던 전법의 열정을, 그리고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존댓말로 대하셨던 상불경(常不輕) 보살을 이제는 더 이상 뵈올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불문(佛門)에 든 지 40년이 된 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선지식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조실, 방장, 회주, 선원장 스님들이 있어도 이렇듯 늠름하고, 자애롭고, 반듯하시며,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중생제도를 하신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시절에 중국 만주에서 출생하여 자수성가하여 서울 성수동에 동아병원(종합병원)을 일군 성공한 의사 김용원(청봉선사의 출가 전 이름)은, 한 때 정치에도 입문하여 국회위원 출마도 했고, 대한불교청년회장으로 불교운동에 헌신하였으며, 무의촌 진료, 재소자 교화 등의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섰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처절한 수행 끝에 혜암 선사의 전법제자가 되어 청봉청운 스님으로 다시 세상에 나와서는 수행보다도 더 치열한 전법의 길에 나섰습니다.

경기도 광주 불심정사에 주석하시며 정릉 삼보정사, 인천 원명정사, 마산 정법사 정기법회를 챙기시고, 4천 명의 회원을 둔 ‘다음카페>장군죽비’를 개설하여 손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문답하시고, <금강경오가해> <육조단경> <반야심경> 해설서와 <짚신은 있는데 사람은 어디갔나> <문을 나서지 않아도 풀밭이니라> 등의 법어집을 저술하셨습니다. 그것도 시한부 삶을 사시면서.

언젠가 선사께서 그토록 전법에 열성이신 이유를 설명한 말씀입니다.

“법기를 찾아 이 절 저 암자를 돌아다녔으나 과연 그럴 만한 그릇은 좀체 없었다. 법거량을 하려들면 먼저 겁부터 집어먹고 ‘개구즉착’이라고 하며 입만 열면 큰 일이나 나는 것처럼 뜻도 모르고 ‘언어도단이요, 언설로 미치지 못한다’ 하면서 도리도 알지 못하는 할이나 방은 함부로 쓰고 있다. 또 턱없이 권두(卷頭)나 하는 등, 제 나름대로 아는 체 집을 짓고 그 집 안에 들어앉아 담판한(擔板漢)이 되어 그 벽을 허물려 하지 않으며, 승려라는 아상(我相)에 꽉 차 있는 벽창호들이었다. 개중에는 쓸 만한 스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심이 잿밥에 있었다. 이제 이럴 바에야 승속(僧俗)에 불문하고 내가 직접 법을 펼 수밖에.”

당일, 선사께서는 치료받으시던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시봉하는 행자를 불러 비구계를 내리고는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기시고 조용히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인과 다름없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을 계시다가 벽제의 화장장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주석하시던 절로 돌아가시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렸습니다. 이 시대의 참스승을 생전에도 후에도 받들지 못한 우리의 풍토가 개탄스러웠습니다. 영정을 뒤따르던 몇몇 스님들과 5, 60명의 재가제자들도 똑 같은 마음을 가지진 않았을지.


차별즉평등(差別卽平等) 평등즉차별(平等卽差別)
매화원래홍(梅花元來紅) 노송고금청(老松古今靑)
청담부명월(淸潭浮明月) 야야적조락(夜夜寂照落)
심무미진종(心無微塵蹤) 월영역무적(月影亦無跡)


남기신 열반송에 “차별이 평등이요, 평등이 차별”인데 스님의 장례는 왜 이리 초라한지, “마음도 머무름이 없고 달그림자도 남김이 없다” 하셨는데 제 마음에는 스님을 보낸 회한이 왜 이리 많은지요. “내 육신을 벗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물으라” 하시던 한 달 전 삼보법회에서 꿀 먹은 벙어리였던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前농협대 교수 박호석 분향 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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