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서 인권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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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미래사회포럼 작성일2011.03.02 조회3,147회 댓글1건본문
“각자의 자리서 인권 되돌아보자”
조국 교수, 불교미래사회포럼서 ‘사회권’ 강조
2011년 02월 23일 (수) 09:01:09 여수령 기자 webmaster@budgate.net
22일 불교미래사회포럼 강사로 나선 조국 교수는 "스님과 교수, 학생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인권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유권에는 매우 예민하면서도 사회권 문제에는 무신경한 편이다. 국가가 나의 자유를 침해하면 화를 내면서도, 교육과 일자리 같은 사회권의 문제는 나와 국가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최근 저서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조국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공적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권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호소했다. 조 교수는 22일 열린 불교미래사회포럼에서 “스님과 교수, 학생 등 각자의 자리에서 인권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실천해 나갈 때 우리 사회의 인권지수는 상승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인권의 실천적 의미’를 짚었다.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법안)가 주최한 이날 포럼에는 조국 교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명하듯 100여 명이 넘는 사부대중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조 교수는 “할머니가 생전에 부산의 한 사찰에 열심히 다니셨는데 오늘 제가 조계사에서 강연하게 된 것을 아시면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며 불교와의 인연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소수자 인권과 자유권, 사회권을 주제로 강의를 풀어갔다. 다음은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인권은 진보ㆍ보수의 문제 아니다
과거에는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온시 되었으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란 단어는 법률용어로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어떠한가?
인권은 실정 법률이 규정하는 권리와는 다르다. 법률적으로는 불법체류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 즉 ‘인권’은 갖는다는 말이다. 인권은 문제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비하면 자유권이 급속도로 발달한 시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현의 자유’는 심각한 후퇴를 겪고 있다.
미네르바의 경우 정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 및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법률적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다.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야간집회 금지조항 역시 2009년 헌법불일치 결정이 났다.
비판언론에 대한 탄압도 이뤄진다. G20 국가 중 정부를 비판한 언론을 수사한 사례가 거의 없다.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 파동을 보도한 피디수첩의 경우 일부 오보가 있다. 그럴 경우 정정보도를 요청하거나 민사배상을 요청하면 될 일인데 정부는 작가와 피디를 수사기소 했다. 또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대표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유신시대 ‘국가 국가기관 모독죄’의 민사적 부활이라 할 만하다.
대의적 민주주의 근간은 흔들리지 않고 있으나 자유권 침해는 이처럼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끊임없는 낙인
소수자의 인권 현황을 살펴보자. 우리 사회는 외국인이나 혼혈, 이단, 빨갱이 등 소수자에 대해 끊임없이 낙인을 찍는다.
오늘날 50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우리 사회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불법체류 여부를 가리지 않고 고용하면서도,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이들의 약점을 잡고 착취와 억압을 일삼는다. 물론 그들은 불법체류를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결혼이주자라고 다르지 않다. 베트남 신부를 소개하는 광고를 보면 노예광고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베트남 여성 후인마이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이다.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추악한 속살이다.
혼혈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하인즈 워드나 할리우드 스타 중 한국인의 피가 한 방울만 섞였다고 하면 환호하면서 실제 우리 사회에서 혼혈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한국에서의 혼혈인들은 교육기회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재일교포 차별에는 분노하면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화교의 처지는 외면했다.
흔히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백인의 흑인에 대한 차별만 생각하지만, 정작 유엔은 우리나라가 인종차별 국가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지난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외국인과 혼혈을 차별하는 단일민족 국가 이미지를 극복하라”는 권고를 했다.
소수자 권익보호 위해 재정 투입돼야
200만 명에 달하는 등록 장애인의 경우를 보자. 등록된 수만 200만 명이지 실제론 이의 두 배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애의 90%는 선천적 이유가 아닌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장애인 등록을 꺼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불편을 끼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당장 자신의 집 근처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시위를 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동정이나 시혜, 배려의 대상인가 아니면 인권의 주체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일례로, 서울대에 맹인 학생과 두 다리가 없는 학생이 입학한 적이 있다. 이들을 위해 수업 교재를 점자로 바꾸고, 강의실을 비롯한 교내 모든 시설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했다. 그러자 “단 두 학생을 위해 돈을 써야 하나, 오히려 생활이 어려운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결국 그 학생들은 입학해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다수결의 방식으로 생각했다면 사회적 변화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소수자 보호와 권익보호에는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다수자의 양보와 부담이 필요하다.
“인권은 다수의 향유물 아닌 소수자 보호 위한 것”
인권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기도 하며, 다수자의 향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반체제 활동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비정규 노동자, 형사피의자, 동성애자, 혼혈인 등의 인권이 어떠한 수준으로 보장되고 있는가가 인권국가 여부의 판단 기준이다.
다음으로 사회권의 문제를 살펴보자.
사회권의 가장 큰 부분은 노동과 복지의 문제다. 나라 전체의 부의 규모는 커졌으나 빈부격차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과거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이 교육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교육 수준 자체가 양극화되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 자체가 박탈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청소년 노동은 법정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고 이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세금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관심 갖자
이처럼 우리는 사교육-실업난-경제난 등의 거대한 쳇바퀴 안에서 뛰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유권에는 매우 예민하면서도 사회권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국가가 나를 도청하거나 복장을 규제하면 화를 낸다. 그런데 사회권 문제에 대해서는 나와 국가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일자리 문제로 힘들어 하면서도, 이를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기 보다 나의 문제라고만 여긴다.
우리는 세금을 낸다. 그런데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그에 개입하지 않는다.
정부는 장기임대주택을 지어야 할 의무가 있다. 공기업인 LH공사가 이를 시행해야 하지만 장기임대주택을 제대로 짓지 않는다. 그러나 주거 문제로 고민하는 시민들은 LH공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교육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교육체제를 바꾸는 데는 무관심하다. 중고등학생 학습수준에 있어 1, 2등을 다투는 곳이 우리나라와 핀란드다. 핀란드에는 사교육이 없지만, 우리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엄청난 사교육비를 퍼붓고 있다. 어떤 것이 효율적인가? 우리도 제도를 바꿔 사교육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제도를 바꾸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조국 교수는 최근 복지국가 논란과 관련, “복지를 반대하는 것은 우매한 것이며, 이는 좌파다 우파다, 보수다 진보다 라는 논쟁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는 새로운 국가성장전략
최근 복지국가가 이슈다. 칠레의 예를 보자. 칠레는 지난 몇 년 수백 개의 어린이집을 지었다. 0~4세 아이들 모두를 무료로 먹여주고 재워준다. 칠레 보수집단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GDP 1만5000~2만 달러 사이에는 고도성장이 어려워진다. 어린이집 건립은 건축, 고용, 출산율, 노동시장 활성화 등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선 성장 후 복지라는 개발도상 시대의 관념을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수정치인마저 복지를 얘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복지 없이는 성장 어려운 시대가 2만불 시대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성장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지금까지 자유권과 사회권, 소수자 인권 등 많은 부분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지수 향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늘 스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스님들은 스님의 자리에서 저 같은 교수는 교수의 자리에서, 학생은 학생의 자리에서 인권의 문제를 되돌아보자. 각자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자. 결국 이는 제도의 문제이고 제도는 선거를 통해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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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월님의 댓글
윤월 작성일조 국 교수의 인권뒤돌아보자 의미있잘읽어소 전적을동감이이요 100년전이나 1000년잔이나세개어르나라에서국민의 인권을생각나라가어느곳에있오역사학을공부하지않은내가생각하기로는 있는자가 궐력자가 자 기의기득권을보천하기위여하는앵동이요 그누그든자기의 인권을지기기위하여 본인스스로 젛황하시요 혼자이힘으로는어려우니이해득실을더나서힘을합하여 싸우는길빢애없오 나는1933년새으로서불의를 보고는참을수가없오조 국 교수의글에 깊은찬사를보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