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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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득환 작성일2013.06.23 조회3,279회 댓글0건본문
현충일
지도법사 김재웅
많은 군인들이 조국을 지키다 전쟁터에서 산화하였다.
그 많은 혼들은 모두 어디에 계실까?
또 무엇을 하고 계실까?
영가들은 어떤 형태로 계시는가?
죽음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낙동강 강변에서 6 25사변 때 인민군만 2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강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는데,
밤에 울음소리 때문에 무서워서 잠을 설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들은 소리다. 3년 동안 매우 심하다가
그 다음부터 차츰 울음소리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루는 밤 10시 경에 우현동 법당 뒤 개울에서
모자도 각이 지지 않고 허술한 교복을 입은 18세 가량 된 학생이
머리를 숙인 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현동 법당에서 400미터 지점에
6․25때 흥해에서 포항시로 넘어오는 인민군을 막으려고
김석원 장군의 지휘 하에 있던 학도병들이 용감히 싸우다
김춘식 외 48명이 산화한 장소가 옆에 있는데,
너무 어려서 죽었다는 한을 해탈하지 못한 채 울고 다니는 것이다.
천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해 35살 되던 해부터
전국적으로 현충일에 금강경 독송을 권장하여
경을 모셔드리는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단군 이전, 그리고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고조선의 치우천황을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나라와 겨레를 지키기 위해 싸운 수많은 조상들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현충일날 오전 10시에 금강경을 읽어 드리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금강경의 법력으로 호국영령을 천도하고,
둘째는 독경 운동을 통하여 금강경을 널리 펴고,
셋째는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법당에 상주할 때,
서울법당 신도님들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서 금강경을 읽어 드렸는데,
한 보살님이 그날 밤 꿈을 꾸기를 국립묘지에 묻힌 사촌오빠가 찾아와서
오늘 경을 읽어 줘서 너무 기쁘고 좋았다고 하더란다.
영가가 안고 있는 한을 풀지 못하고 죽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금강경의 법력과 미륵존여래불 백색 광명에는 모든 한이 해탈한다.
이 국토가 생긴 이래
국토를 수호하다 몸 바꾼
유주무주 애혼고혼 등 모든 영가들이 사람 몸 받아
금강경 읽고 미륵존여래불 잘 바쳐 부처님 잘 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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