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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포교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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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3.09.16 조회4,72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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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시장통이 내게는 신성한 도량”
 
2005년부터 갈현동 시장에 사찰 개원… 불법 홍포 앞장
“시장에 왠 절이냐”던 상인들 이제 신실한 버팀목 자리매김 
탈핵 운동 선구… SNS 포교도 ... “불법은 생활 속에 있다” 강조
  

▲ 법현 스님은 … 운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1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
했으며,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을 마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을 하며 불법 홍포의 원력을 세웠으며, 높은 신심으로
대불련 서울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태고종 총무원 총무부장, 교무부장, 사회부장, 교무부원장 등
종단 중책을 두루 역임했으며, 현재는 열린선원장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은 대표적인 서울의 저잣거리다.
이곳에는 특별한 사찰이 있다. 바로 태고종 열린선원. ‘저잣거리 포교’를 기치로 내세운 법현 스님은
 2005년 6월 5일 이곳 시장통 상가 한 가운데에 작은 사찰을 개원했다. 스님은 꼬박 8년을 시장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전법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왜 스님은 시끄러운 시장에서 전법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대부분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전법의 대상은 지위고하와
연령이 나눠있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불교 인구는 약 5억 명 정도입니다. 60억 인구 중 55억 명은
불교를 모른다고 봐야지요. 그들 모두에게 불교를 알리는 것은 한계도 있고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가능성이 없다고 안하는 것은 부처님 제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생업 중인 시장 상인과 오가는 손님들
을 대상으로 포교해 불자로 만드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인만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과 호흡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곳에 선원을 열게 됐습니다.”
 
법현 스님의 열린 선원은 ‘저잣거리 포교’의 시초라는 것 이외에도 ‘온오프라인 포교의 첫 만남’이라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지난 2001년 인터넷 카페 ‘열린 절’을 개설·운영해온 법현 스님은 600여 명의 회원들과 불교 교리와
문화, 역사, 수행법 등을 나눴지만 함께 토론하고 수행할 공간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사이버
교육공간의 실습장과 저잣거리 포교 등 새로운 포교의 방편 도량인 열린 선원이 개원하게 된 것이다.
 
 

▲ 2012년 은평구청장과 함께하는 이야기 콘서트에서 법현 스님이 갈현 2동 대표로 발언하고 있다.
 
시장 식구들이 신도이자 도반
스님은 이곳에서 음력 법회를 지양하고 토·일요일 정기법회와 17차례의 열린불교아카데미와
 명상문화아카데미를 개최해 불교의 생활화와 현대화를 도모했다. 일찍 세상을 뜬 시장 상인들과
가족에 대한 천도재도 지내줬다.
 
이제는 신도 700명이 있는 도량으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개원 당시 같은 층에는
기도원과 3층에는 교회가 있었다. 3층 교회의 경우 문을 닫았지만 처음부터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는 개원 인사를 하러 간 스님에게 3층 교회 목사는 교회 주보에 나온 예배시간을 보여주며
“시간을 피해서 기도하라”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시장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 웬 절이냐, 손님이 끊긴다”, “재 소리가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스님은 스스로 낮아져 그들의 눈높이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웃으며 그들의 대소사를 챙겼다. 살가운 스님의 인심은 그들의 마음을 녹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안면을 트고, 물건도 사주고 했지요. 우리 선원은 영세해서 공양주가
없거든요. 반찬가게 가서 내가 먹을 반찬도 사고, 떡집이나 과일가게에 가서 부처님에게 올릴
공양물도 샀습니다. 그들이 선원에 오든 안 오든 그것은 크게 상관없었습니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선원에 와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열린’ 도량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와 시장 구성원들은 한 식구나 다름없지요.”
 
스님에게 시장 상인과 시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신도이자 도반이고 식구이다. 천도재 소리가
시끄럽다며 화를 내던 시장 상가의 사장은 이제는 “사찰이 잘 돼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신실한 신도가 됐다. 부처님오신날 연등 달기에도 시장 상인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상인과 손님들에게 개원 8년차의 열린선원은 원래부터 자리하고 있던 뿌리 깊은
고목이 된 것이다.
 
‘불법 홍포’… 평생의 원력
사실 법현 스님은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불교 포교에 매진하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평택 명법사 학생회 활동을 하며 처음 불교를 접한 이후부터 수행자가 된 지금까지 그랬다.
중앙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이후 시작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는 서울지부장까지 역임
하기도 했다.
 
대학생 때에는 평택에서 학교를 통학하며 버스와 지하철에서 매일 불교를 알리려고 노력했다.
불교 관련 자료를 정리해 차 안의 승객들에게 나눠주고 팔정도와 육바라밀 등 불교 교리에 대해
설명했다. 어떻게 하든 유익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고 싶었던 20대 청년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래서였던지 화를 내거나 반발하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태고종으로 출가하고 수행자가 돼서도 스님의 관심은 당연히 ‘포교’였다. 당시에는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에게 쉽게 불교를 전하고 싶었던 스님은 YMCA까지 찾아가 레크리에이션
을 배웠다.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쉽게 불교를 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의 불교레크리에이션협회 회장직을 1990년부터 1998년까지 8년간 맡으며 협회
발전에 기여했다.
“레크리에이션 하면 춤, 노래, 게임 같은 걸 연상하지만 본질은 말 그대로 '재창조'입니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여가 선용인 거죠. 그런 의미라면 참선만한 레크리에이션이 없습니다.”
 
더욱더 사회와 생활 속으로
법현 스님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불교식 차례 올리기 운동’이다. 올해에도
9월 8일 열린선원에서 추석 차례 시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법현스님은 차례 올릴 때 차를 올리지 않고 술을 쓰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운동을 90년대 초부터
전개해 왔다. 1997년도에는 천중사에서 제1회 불교식 차례시연회를 개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는 각 종단의 의식집과 의식관련 논문, 다도서적에 인용되고 있다. 2005년도에는 학술적으로
고찰해 보조사상연구원 정례세미나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주례 없이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림으로서 부부의 인연을 맺는 ‘불교식 화혼’ 운동을 펼친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중의 일상생활에 녹아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지역 사회 현안을
 살피는 데에도 열심이다. 스님은 갈현2동 복지두레위원, 공동체복원추진위원 등을 맡으면서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탈핵운동으로 활동 지평을 넓혔다. 불교생명윤리협회 집행위원으로서 탈핵 관련 단체 연대
운동과 서울·경남 탈핵학교에서 강연을 진행 중이다. 9월 3일에는 탈핵을 위한 춘천-양수리 도보
기행에 동참하기도 했다.
 
기본이 되는 불교 교육과 포교
사회운동, 종교간 대화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스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아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어서다. 즉,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열린선원의 정식 신도가 되기 위해서는 4개월 과정의 명상문화아카데미에서 불교사상ㆍ의례의
기초 등을 배워야 한다. 2010년 사찰 자체의 ‘한글법요집’을 발간해 의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모두 대중들에게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백중 법회도 이런 스님의 철학이 반영됐다. 일반적인 사찰에서 백중은 조상의 은덕을 기리기
위한 천도재를 지낸다. 하지만 스님은 칠석부터 백중까지를 특별정진기간으로 삼았다.
 
 ‘만남의 칠석에서 보냄의 백중까지 생사참구팔정도 정진’을 주제로 열린 특별정진은 매일을 팔정도의
 가르침에 맞춰 정진하는 날로 삼아 수행토록 참가대중을 독려했다.
 
최근 스님은 ‘카카오 스토리’, ‘트위터’, ‘페이스 북’등 SNS에 관심이 많다. ‘카카오 스토리’등을 통해서
스님의 짧은 글과 단상을 구독하는 사람만 수만 명에 달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SNS를 포교에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불교 한글 의식집을 만드는 것도 스님의 목표다. 대부분의 불교 의식들이 스님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대중들이 주체가 되는 의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우도의 마지막 장면은 ‘입전수수(立廛垂手)’로, 한 스님이 큰 걸망을 지고 저잣거리로 나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고 거리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는 경지가 부처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다.
 
지금도 대중에게 불법을 알리기 위해 시장통을 분주히 오가는 법현 스님의 모습에서 심우도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진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해묵은 명제도 스님의 열린 공간 안에서 상존하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201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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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손주님의 댓글

강손주 작성일

스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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