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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동문 - 니까야 읽기 회향법회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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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4.01.02 조회5,285회 댓글0건

본문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는 가르침
현대물리학 발전 후 비로소 해독 가능했다”
전재성 박사, ‘동산불교대학 니까야 읽기’ 7년 회향서 강연
“니까야 쉬운 말로 번역된 듯해도 제대로 된 해독 어려워”
 
동산불교대학이 7년 간 진행해온 니까야 읽기가 마침내 회향됐다. 지난 2006년 12월 7일 입재한 이래
 이미령 교수의 지도로 매주 1회 진행돼온 니까야 읽기 모임은 지난 2013년 12월 26일 회향식을 가짐
으로써 7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7년 간 빠짐 없이 니까야 읽기 모임을 완성한 불자는 모두 7명.
이 영광스러운 얼굴들과 지도를 해온 교수 이미령 선생, 그리고 니까야 번역을 완역해 니까야
읽기모임을 가능하게 해준 전재성 박사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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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불교대학 니까야 읽기 7년 결사 회향식에서 강의하는 전재성 박사
 
이날 초청 법사로 회향식에 참석한 전재성 박사는 고 김재일 법사가 니까야 모임을 결성해서 시작을
 했던 7년 전을 회고하고, 결코 쉽지 않은 ‘불사’를 마친 니까야 읽기모임을 축하했다. 특히 전재성
박사는 니까야의 중요성, 니까야 번역을 해오면서 느낀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 부처님 가르침의
완전성 등에 놀라고 있다며 자신의 의견을 강의 형식으로 풀었다.
 
 전재성 박사의 30분 강의 내용 요지를 정리했다. 편집자
 

전재성 박사 강연 요지

독일에서 공부한 후 니까야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30명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2명으로
 줄었습니다. 니까야 공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정확한 분이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장 아름답고 분명한 가르침들이지요.
 그것을 후대에 적은 것이 팔리어 경전입니다. 팔리어는 베다어나 산스크리트어를 다 공부해야
간신히 해독할 수 있습니다. 해독이 쉽지 않은 언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당대에 보편적으로 쓰이던 언어는 팔리어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갠지스 강 인근 특정한
 지역에서 쓰이는 표준말이었습니다. 비컨대, 산스크리트어는 서울말, 빨리어는 경상도말이나
전라도말이라고 보면 될까요. 또 비유하자면 산스크리트어는 독일어, 팔리어는 프랑스어라고
보면 됩니다. 니르바나, 닙바나처럼 발음이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특징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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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 읽기 7년 결사 회향식이 지난 12월 26일 오후 동산불교대학 2층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향식에서는 지도교수 이미령 교수(아래 사진)의 지도로 모두 7명의 불자들이 7년 결사를
회향했다.

237450121_dd0caeee_B4CFB1EEBEDF-C0CCB9CCB7C9.JPG다 알다시피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이셨고, 교육을 받은 분이므로, 자신이 하신 말을 여덟 자로 정리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니까야는 사실 산문이 아니라 운문이었습니다.

부처님 당대에는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고대종교는 대개 제사 중심의 종교입니다. 힌두에서는 ‘뿌루사’라고 하는 원인을 말합니다. 뿌루사는 최초의 유일신적 존재를 말하는데, 이 뿌루사가 죽어서 우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눈이 태양이 되고 귀가 공간이 되고, 뼈와 살이 산이나 땅이 되고, 그런 식입니다. 인도의 제사는 그래서 상당히 우주적입니다. 제사란 뭔가요. 죽은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려면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제사에서는 가장 귀중한 것을 바쳐야하는데, 신이 자기를 죽여서 우주가 되었으니까, 신을 살리려면 전체를 죽여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으니까 자기 목숨대신 동물들을 죽인 것이지요.

모든 종교는 대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는 달랐지요. 모든 것을 다 죽여야 했습니다.
 인도의 제사는 공계, 천계, 땅 등 모든 것을 다 죽이는 제사였습니다. 제단을 만들 때 벽돌
하나하나에 별, 호랑이, 곰, 해 등의 의미를 붙여서 우주를 다 죽이는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무려 생명 700마리를 죽인 적도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죽은 신을 살려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 부처님 당대에 와서 사문, 수행자들이
 생겨나면서 이 제사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절대신에게 바치는, 신을 살려내려는 제사에서,
즉 외면적인 제사에서 내면적인 제사로 바뀝니다. 자기 안에서 지내는 제사인 것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신비주의적인 종교가 생겨나게 됩니다.

내면적인 제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제사의 부작용이 있었는데, 그 방대한 내용을
다 외울 수는 없고, 실수라도 하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고 해서,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제사로 인해 사회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겨났습니다. 또 한 가지 제사를 지내는데 뭘 크게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무엇인가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경건하게 제사지내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제사를 지내려면 바치는 사람,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누군가요. <우파니샤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면적인
제사의 핵심은 호흡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상에 잠기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호흡입니다.
 
번뇌망상이 가라앉고 외부의 모든 것이 좀 쉬어졌을 때 느끼는 것이 호흡입니다. <우파니샤드>에
보면 들숨을 날숨에 바치고, 날숨을 들숨을 바칩니다. 즉 들숨을 날숨에 제사지내고, 날숨을
들숨에 제사지낸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대 전환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전환점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호흡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
졌습니다. 언어나, 사유하는 것,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다 호흡의 역동적인 작용에 해당합니다.
 외부적인 바람도 호흡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의 전통과 달랐던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종교 가운데에서 제사의 전통을 어느 정도 잇고 있는 종교가 가톨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다릅니다. 부처님은 모든 언어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사유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경전을 읽어보면 허점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문학도 읽어보면
허점이 보이는데 부처님의 경전은 다르다.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경전의 내용에는 하자가 거의 없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봐도 어긋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허점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실로 대단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불교가 어려워졌습니다. 한문의 추상성 때문입니다. 말의 어렵고 쉬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거기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말이 쉽다고 해서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직까지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드뭅니다.
무착, 세친, 붓다고사 등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해석이
되는데 무려 1500여 년이 걸렸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데비드 흄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정확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의 뉴턴의 만유인력 이유 새로운 철학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가증해진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흄의 경험철학으로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던 것이지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연기 법칙의 첫 번째 법칙입니다.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말도 쉬운 것 같지만,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또 몇 백 년이 흘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던사이언스>의 첫 장을 펴면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말이
나옵니다. ‘원인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뉴턴의 만유인력
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인과가 뭔지를 아는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과라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께서 하신 말고 똑같을 수 있을까.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다 알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충분한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전이 쉬운 말로 번역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쉽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거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거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일어난다, 원인과 결과가 병
발(竝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번역에는 병발이 아니라 시간지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공을 던져 유리창을 깨면 공을 던지는 것이 먼저고 깨지는 것이 뒤였습니다. 그러나 현대물리학
에서는 그것이 설명이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병발이 맞습니다. 이것 참 어려운 것인데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별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수백억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하여간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사무량심 가운데 자애관, 자애의 마음을 내는 순간에 벌써 우주
전체에 그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자애관을 우습게 알면 절대 안 됩니다.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하는 순간에 벌써 몇 백 억 광년이 떨어진 우주 전체에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 쉬운 것을 왜 안하나요. 안 하다보니까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곧바로 그 순간 전달이 됩니다. 그것을, 바로 이 진리를 모르니까 불행하게도
엄청난 비극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킬링필드의 나라이지요. 월남전쟁 당시 미국이 병목처럼
 되어 있는 베트남의 허리 부분을 꽉 장악하고 있으니까 월맹군은 캄보디아 땅을 통해 우회해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때 캄보디아 왕이 시아누크였는데 미국은 캄보디아가 월맹을
돕는다는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캄보디아에 엄청난 폭탄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반미
였던 크메르 루즈를 지원했습니다. 미국이 친미정권을 반대하는 크메르 루즈 반미정권을
지원하는 오판을 하는 틈에 그들은 프놈펜으로 가서 친미주의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자를 아는 사람이나, 의사, 안경 쓴 사람 다 죽였기 때문에 캄보디아는 정말로 너무너무 불쌍한
 나라가 됐습니다. 어쩌면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 말씀에 원한은 원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엄청난 비극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되는데, 원한은 원한의 여읨을 통해서만 극복이 되는데 이것을 모르니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것이 <자애경>입니다. 짧고 쉽지만 그 의미는 엄청나게 중요하지요.
자애를 방사(放射)하는 것인데,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자애의 마음을 방사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어떻게 2500년 전에 부처님은 이것을 알았을까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
나,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등의 말들이 아주 심사숙고해서 완벽하게 짜인 것입니다. 이것을
외워야 합니다. 이것을 외워서 이런 높은 의식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멍청히 경행하거나 참선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외워서 높은 의식수준에 도달할 때 삶이 변합니다. 또 변해야 합니다.
 
 이 밖의 니까야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개론서나 대승불교와는 천지차이의 완전히 다른 깊고 심오한 내용들이 니까야에 가득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안 보인다. 자세히 보는 사람만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나 쉬운 말로 되어 있어 도리어 그 뜻을 잘
 모르고 지나간다. 그러나 거기에 엄청나게 심오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저는 지금 율장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율장을 번역하면서 부처님의 경전보다도 율장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라는 것을 모아놓은 것이 경장이고, 하지 말라는 것을 모아놓은 것이
 율장인데, 어쩌면 율장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율장을 번역하며 율장의 내용들이야말로
 정말로 위대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리즈데이비스 박사가 PTS(팔리
텍스트 소사이어티)를 하게 된 것도 율장을 보며 느낀 감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
 
는 율장을 보며 감동해 판사직을 포기하고, 팔리 텍스트 소사이어티를 만들어 팔리경전 번역을
시작한 것이지요. 율장 1, 2권이 2월 정도에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분량은 1000 페이지 짜리
 두 권에 해당합니다.

 
<글 : 미디어붓다,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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