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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료실 삼처전심(三處傳心)-오형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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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無碍 옮김 작성일2006.09.27 조회6,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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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처전심(三處傳心)***
(석가모니께서 세 곳에서 제자 가섭존자에게 부처님 마음을 마음으로 전한 것)
자세한 설명을 소개하면

①다자탑전 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

「잡아함경」에서 유명한 다자탑전 분반좌의 이야기가 있다.
다자탑은 중인도의 비야리성 서쪽에 있는 탑이며 다자탑이 건설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 당시에 왕사성(王舍城)에 사는 한 장자(長子)가 있었다. 그는 재산과 보배가 많았고 아들과 딸을 30명이나 출생하여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교외로 유람을 나갔다가 나무 밑에서 어떤 사람이 큰 나무릍 베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나무는 잔가지가 많고 무성하여 그 인부가 끌어도 잘 끌리지 않았다. 그 인부는 다시 작은 나무를 베서 그 나무를 끌었다. 그 작은 나무는 가지가 별로 없고 가벼워서 지체없이 장애되지 않고 잘 끌려 갔다.

이 때 장자는 나무가 크고 적은 것에 따라 끌리고
끌리지 않은 것이 업보가 많고 적은 것과 같다는 것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것은 큰 나무와 같이 자신에게 권속이 많아서 미움과 애착이 많게 되는 것이고 또 번뇌가 마음을 결박하여 번뇌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장자는 곧 미움과 애착을 단절하게 되고 생과 사의 숲속에서 해탈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 장자는 나무를 베는 장소에서 즉각 벽지불(벽지불)이라는 성과(聖果)를 증득하게 되었다.
그 후 그 장자가 열반하게 되자
권속들이 벽지불과를 증득한 곳에 탑을 세웠으며 탑의 이름을
다자탑(多子塔)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여러 자식들이 세운 탑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뜻있는 유래가 얽힌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이 한 때 여러 대중을 모아놓고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여러 제자들 가운데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불타는 그 때 가섭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잘왔다. 가섭아, 이리 와서 내 자리를 나누어 앉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시며 자리를 권하였다.

가섭존자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저는 여래의 말단 제자인데 어떻게 감히 부처님과
자리를 나누어 함께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에는 순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씀을 올렸다.

이 때 대중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문(가섭)이라 할지라도
어떤 공덕이 있어서 부처님과 자리를 같이 하여 앉을 수 있겠는가 라고하면서 의아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떤 제자는 가섭존자가 특수하고 수승하다는 것을 부처님만이 알고 계시겠지 하는 등 대중들은 여러 가지로 궁금해 하였다.

부처님은 그 때 대중들의 생각을 간파하시고 그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말씀하셨다.

"가섭존자가 수행한 대승보살행은 그 뜻이 광대하고 깊다.
그리고 가섭은 대자대비와 사선삼매(四禪三昧)의 선정과
무량한 공덕과 모든 장업이 나와 꼭 같도다."

부처님은 다시 가섭존자를 오게하여 자리를 절반씩 나누어 같이 앉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후세학자들은 불타가 최초로 가섭에게 법을 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는 그 경지릍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최초의 전심(傳心)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그 물이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과 같이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경지이며 여타의 사람은 알기 어려운 경지다.
(此是最初傳心. 如人飮水 冷暖自知 證者方知 餘莫能測也).


②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가섭존자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에게 꽃을 들어 보였다.
다른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는데
오직 가섭존자만이 파안미소(破顔微笑)를 하였다.
이것을 선가에서는 영산회상 염화미소라고 말한다.

영산(靈山)은 곧 영취산(靈鷲山)을 말하며 영취산은 중인도의 마갈타국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옛날에 신선들이 많이 살고 독수리가 많이 날아와 살았다고 한다. 산이름도 신령스러운 독수리의 이름을 따서 영취산이라고 붙였다.
부처님은 이러한 영취산을 수도도량으로 삼고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설법을 자주하였는데
영취산에서 가진 법회의 모임을 영산회상이라고 한다.

하루는 부처님 이 영산회상에서 많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다가 묵묵히 한 가지의 꽃을 들어 보였다.
그 때 제자들은 모두가 꽃을 든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다보기만 하였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오직 가섭존자만이 그 뜻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이므로 말로서 대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응답을 보냈다.

진리는 불완전한 언어로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묵언(默言)으로 응답한 것이다.
미소로 대답한 경지는 맑고 깨끗한 정신만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라고 한다.
이 때의 마음은 때묻은 마음이 아니고 또 상대적인 마음도
아니며 그리고 어떠한 경계가 있거나 장애가 있는 마음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마음은 피차가 완전히 화합하고 간격이 없는 절대의 경지이며 하나의 세계를 이룬 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 때의 마음과 마음이 화합하여 전달된 것을 이심전심(以心傅心)이라 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때묻은 마음으로는 체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減)의 경지라고 한다.

이 때에 부처님은 가섭존자에게 정법(正法)으로 전했다고 해서
제이전심(第二傳心)이라 하고 종합하여 말하기를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拈花微笑)라고 한다.

각운(覺雲)선사가 편찬한 선문염송(禪門拈頌)의 고측(古則)에 기록된 게송.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고 계실 때
하늘에서 사방으로 꽃비가 내렸도다
세존은 드디어 그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오직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도다."
(世尊在靈山說法 天雨四花 世尊遂拈花示衆 迦葉微笑)

이상과 같은 전법의 게송은 세존이 가섭존자에게 전법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세존은 이심전심의 법을 인가하고 영산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법을 전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으니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付囑摩訶迦葉)

이상이 선문염송(禪門拈頌)에 기록된 고측(古則)의 내용이다.
이 가운데 정법안장(正法眼藏)의 내용은 심오하여 일반이 알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있다.
  이제 정법안장이라는 말을 해석해 보기로 한다.
정(正)은 삿된 것을 바르게 가리는 것을 뜻하고(揀邪爲正)
법(法은) 법칙을 잘 지속시키는 것을 뜻하며(軌持爲法)
안(眼)은 진리를 잘 비추어 아는 것을 뜻하고(照了爲眼)
장(藏)은 모든 진리를 보존하고 섭지하는 것(含蟠爲藏)이다.

정법안장은 법의 상징으로서 열반묘심(涅槃妙心)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즉 세존의 염화와 가섭의 미소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을 전달한 선법의 경지라 본다.

선서(禪書)에서는 현재의 모든 사람도 각자가 정법안장을 보존하고 있으며 매일 일어나고 앉으며, 가고 오고 하는 일상생활이 모두 정법안장의 광체라고 한다.
이러한 눈이 열릴 때는 하늘과 땅, 해와 달 그리고 별과
삼라만상이 모두 면전의 진리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열반묘심도 모든 사람이 구족하고 있다고 한다.
열반은 고통을 야기하고 마음을 혼잡하게 하는 번뇌심(煩惱心)이 정화되면서 체득한 진여심(眞如心)의 작용을 뜻한다.
그러므로 열반묘심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곧 진여심을 말한 것이다.
성유식론 (成唯識論)에서는 진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여(眞如)의 진(眞)은 진실을 의미하며
허망된 것이 아닌 것을 나타 내는 것이다(眞謂眞實 顯非處妄).
여(如)는 항상 같음을 뜻하며 변역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다(知謂如常 表無變易)

다시 말하면 진실은 일체의 체성 위에서
항상 그 성질이 변하지 않고 나타나기 때문에 진여라고 하며
모든 법계(法界)가 일진법계(一眞法界)의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여라고 한다.
진여는 본래 존재하는 것이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것(無始無終)이다.

그러므로 잡아함경에 연기법은 어느 누구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하였고
해심밀경에서는 법이도리(法爾道理) 즉,
누구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고 본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진여의 경지가 정법안장의 경지와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타와 가섭존자와의 사이에 진여심이 상통하여
영상회상의 세존염화와 가섭미소가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③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석가세존께서 북인도 쿠시나가라성 북서쪽의 사라수(沙羅樹) 여덟 그루가 둘씩 마주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涅槃)하자,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가섭이 늦게 도착하여 부처님의 관 주위를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고는, 열반하시는 모습을 못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울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이셨다.

장소와 법을 전한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중인도의 "구시나가라" 라는 성 밖에
발제하라는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사라(沙羅)라는 나무가 있었다.
사라(sala)는 고원(高遠) 또는 견고(堅固)하다는 뜻이다.
사라수 (salavrksa)가 언덕 위에 사쌍팔척(四雙八隻)이
있었는데 이것을 사라쌍수라고 말한다.
나무들은 사방에 서 있었는데 하나는 마른나무(一枯)이고
또 한 나무는 푸르고 영화스럽게생긴 나무(一榮)였다.
그리하여 마른 나무를 무상(無常)에다 비유하고
푸른나무는 변하지 않은(常)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부처님은 이들 사라나무가 사쌍으로 있는 그 사이에
보상(寶床)을 놓고 그 위에서 쉬고 있었다.
부처님은 구시나가라성에서 대중들에게
"나는 이제 등도 아프고 또 열반에 들 때가 다 되었으니 열반할 곳으로 가겠노라." 라고 하고 곧 이곳으로 온 것이다.

사라쌍수 밑에서 "우리는 부처님 열반하신 후에 무엇에
의지하여 수도를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였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라.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의(義)에 의지하여 진리를 공부하라. 나는 성도 후 지금까지도 한자도 설하지 않았느니라."
부처님은 이와 같이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세상의 인연이 다 되어 머리를 북쪽에
두고 누워서 80 세를 일기로 2월 15일에 열반(涅槃)하였다.
그 때 부처님의 몸은 학의 색깔(鶴色)이었다고 한다.
그 것은 진상(眞常)과 진락(眞樂) 그리고 진아(眞我)와 진정(眞淨)에다 비유하기도 한다.
진상은 변함이 없는 것을 뜻하고 진락은 고통이 없는 것을 뜻하며 진아는 참된 자아를 뜻하고 진정은 진실하게 청정함을 뜻한다.

그런데 그 때 부처님의 수제자인 가섭존자는 여러 제자와
함께 기사굴산이라는 곳에서 선정을 닦고 있었다.
가섭이 선정(禪定)에 들어 있을 때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고 해와 달의 빛이 없어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새와 짐승들이 슬프게 우는 것을 들었다.
가섭존자는 "세존께서 몸이 쇠약해져서 결정코 입적(入寂)하신 것을 알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면서 슬픈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가섭존자는 신통력이 있기 때문에 비행하여 갈 수도 있었지만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경망스럽게 비행(飛行)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최대로 빠른 걸음을 재촉하여 길을 찾아 달려 갔으나 7일이 꼬박 걸렸다.
가섭이 구시나가라성에 도착하여 사라쌍수나무 밑에 계시는
석존의 처소에 가보니 세존께서 입멸(入滅)하신지 이미 7일이 지난 후였다.

가섭존자는 몸을 가다듬고 세존이 입관된 관 옆으로 다가서서 슬프게 울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열반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빠르시나이까.
제가 올 때까지 대비(大悲)를 베푸시어 기다리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섭존자는 관을 돌면서 여래의 이마에다 경례하고
또 여래의 가슴에다 경례하였으며 또 여래의 손에다 경례를 올렸다. 또 다시 여래의 허리에다 경례를 올렸으며 다시 여래의 배에 경례를 올리고 , 부처님의 발에 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 가섭존자는 다음과 같이 발원하였다.

"이제 부처님을 대하니 어떤 면으로 보아도 부처님이 열반하셨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제가 진정한 경례를 올리고자 하오니 경례를 올릴 곳을 보여 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관안에서 두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여 주셨다.
그 발은 천개의 해가 빛을 발생한 것과 같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비추며 환하게 조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여래의 발은 스스로 조용히 관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관의 봉폐(封閉)는 그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상과 같이 가섭존자는 늦게 도착하여 비록 부처님의 몸이
관 속에 계시지만 살아 계신 부처님을 친견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사라쌍수의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한다.

부처님의 곽시쌍부한 도리를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혼의 근원은 본래 잠적(湛寂)하여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다.
마음의 묘체(妙體)는 신령스럽고 밝은 것인데 어찌 생과 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니련선하의 언덕에서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실 수 있는 것이다."
(靈源湛寂 無古無今 妙體靈明 何生何死 所以泥蓮河畔 槨示雙趺)

이와 같이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선과 악의 업력도 다 없어졌으며
동시에 영혼을 다음의 세계로 끌고 같 만한 업력을 정화한 성인은 항상 생과 사를 초월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죽음에 구애되지 않고 항상 살 수 있는 법을 설한 기록을 하나 소개해 보기로 한다.
황벽산의 단제선사가 저술한
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는 다만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한 것이고 사대(四大)도 내가 아니라고 관하라.
그리고 진여심(眞如心)은 모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고 관하라.
출생할 때 성품이 온 것이 아니고, 사망할 때 성품이 가는 것이 아니니
잠연하고 원만하여 고요한 마음과 경계는 동일한 것이라고 관하라.
다만 이와 같이 바로 깨달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번뇌와 업력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니 이러한 사람들을 출세인(出世人)이라고 하느니라."
(凡人臨 欲終時 但觀五蘊皆空, 四大無我, 眞心.無相,
生時性亦不來, 死時性亦不 去, 湛然圓寂,, 心境一如,
但能如是 直下頓了, 不爲三世所拘繫, 便是出世 人也).

-오형근 "인도불교의 선사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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