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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자료실 매월당(梅月堂)=설잠(雪岑) 金時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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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태형 작성일2012.04.19 조회6,78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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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잠(雪岑) 金時習
(1435-1493) 호는 매월당(梅月堂)·

유가(儒家)의 학자로서 출가하여 佛家에서 雪岑스님으로 생을 마감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生六臣으로 파격적 삶을 산 학자이지만, 雪岑스님로서는 뛰어난 불교저술 등으로 조선 전기 불교의 훌륭한 고승이었다.

김시습은 5세부터 영재로 인정받아 유학에 통달 하였으나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계기로 속세를 떠나 佛法으로 깨달음을 얻고 설잠스님으로 걸림이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김시습은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신동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3세에 능히 시를 지어 “꽃이 난간 앞에서 웃고 있으나 그 소리 들리지 않고, 새가 수풀에서 울고 있으나 눈물은 보기 어렵구나” 등의 시를 남겼고, 5세에 중용과 대학에 통달하여 김오세(金五歲), 오세신동(五歲神童)이라 불렸다.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은 당시 옆집에 살던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 지어준 것이라 한다. 5세 때 이미 세종의 총애를 받은 그는 13세까지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김반(金泮) 등 뛰어난 대학자들의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또한 18세 때 송광사에서 함허스님의 제자인 선승 준상인(峻上人)과 함께 하안거(夏安居)를 보내면서 참선지도를 받았다고 하니 불교와도 인연이 있었다.

20세 때 결혼한 김시습은 이듬해 경전공부와 무술연마를 위해 삼각산 중흥사로 들어갔다. 여기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3일간 통곡 하였다고 한다.

출가 후 그는 설악산으로 들어가 오세암에서 수도하여 깨달아 "선리(禪理)가 자못 깊어 5년을 공들인 끝에 투관(透關)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설잠 김시습은 선승이면서도 화엄과 법화사상과 조동선(曹洞禪)까지 깊이 연구하여 화엄법계도주(華嚴法界圖註)와 법화경별찬(法華經別讚),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등을 저술한 불교사상가로 조선시대 전기에 훌륭한 고승이다.

경주 월성(月城)의 남산인 금오산(金鰲山)에 있는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매월당 김시습) 설잠스님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모신 충청남도 부여 萬壽山 무량사에서 59세에 입적하여 그 곳에 설잠 김시습스님의 영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64호)과 부도탑이 있다.  부여 萬壽山 무량사에는 보물356호 무량사 극락전과 보물185호 무량사5층석탑, 보물233호 무량사 석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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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태형님의 댓글

조태형 작성일

설잠 김시습스님의 영정 (보물1497호),  무량사 아미타삼존불(보물1565호),  무량사 미륵괘불(보물1265호)로 문화재 승격 지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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